2025년 10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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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는 전통 위에 세워지며, 모든 이해와 진리의 기반

[박병준 신부의 철학상담] 41. 권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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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는 사전적 정의에 의하면 ‘타자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일종의 힘’으로 언뜻 인간의 자율성 혹은 근본 자유와 대치되는 개념으로 비칠 수 있다. 그러나 권위는 철학적으로 강제적 억압이나 구속을 전적으로 배제하는 자유에 기초한 자발적이며 자율적인 타자에 대한 영향력을 의미한다. 이런 의미에서 ‘권위’는 ‘권력’과 근본적으로 구분되는 개념이다. 그런데 오래전부터 철학의 주요 주제가 되어 왔던 권력과 다르게 권위가 철학적으로 주목받는 개념이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권력은 무엇보다 인간의 잠재된 본능적 욕구나 욕망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강제와 억압을 통한 지배 의지의 관철이라는 타율적 성격을 내재하고 있는 반면, 권위는 지배의 타율적 성격이 배제되고 내면의 자율성이 강조된 능동적 행위다. 또 권위는 ‘권한’처럼 제도나 법률 같은 외적 형식에 의하여 외부로부터 부여받은 힘과도 구별된다. 그런 차원에서 권위가 반드시 권한의 사용으로부터 드러나는 것은 아니며, 권위 없이 권한이 주어지듯이 권한 없이 권위도 주어질 수 있다. 누가 권한이나 권력을 이용하여 타인에게 강압적으로 권위를 요구할 경우, 이를 부정적 의미의 ‘권위주의’라고 명명한다.

권위를 뜻하는 라틴어 ‘auctoritas’는 ‘auctor’(원작자)라는 어근과 ‘augere’(증가·확대하다)라는 동사에 어원을 두고 있다. 권위는 어원적으로 원작자에 의하여 확실하게 ‘보증된 힘’을 뜻한다. 이런 이유로 오늘날 자주 권위는 학문적으로 원작자를 인용함으로써 드러나곤 한다. ‘권위 있는 논증’(argumentatio ex auctoritate)의 표현에서 보듯이 누가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거나 주장할 때 원작자의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것을 적절하게 인용한다면 그의 말에 권위가 생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권위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 철학자로 현대 철학적 해석학의 기초를 세운 가다머(Gadamer, 1900~2002)가 있다. 가다머는 권위를 해석학적 관점의 이해와 인식의 근본 문제로 환원시킨다. 그는 기본적으로 권위의 본질이 인간의 자유로운 이성에 기초한 ‘인정’과 ‘인식’, 다시 말해 스스로 자기의 한계를 인식함으로써 선행에 있는 다른 사람들의 더 나은 ‘판단’과 ‘통찰’에 순응하고 이를 인정하는 탈계몽주의적 합리적 이성에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권위에 상응하여 우리가 이미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당위의 전제된 조건이 이미 개인의 인식에 앞서 존재하며, 이것이 다름 아닌 역사적으로 전승되어 오는 ‘전통’이다. 즉 권위는 전통 위에 세워지며, 이는 모든 이해와 진리의 기반이 된다.

물론 가다머의 이런 주장은 전통이 무조건 절대적 진리이며 권위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보다 오히려 이해가 기본적으로 전통이라는 선입견 위에 기초하고 있는 만큼 이런 제약된 조건 속에서 우리가 자기 한계를 인식하고 더 나은 통찰을 신뢰하는 이성에로 도약해나갈 필요가 있음을 강조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오늘날 사회 곳곳에서 일방적으로 권력과 권한만을 앞세우며 전통을 무시하거나 파괴함으로써 스스로 권위를 실추하는 현상을 목도한다. 실추된 건강한 권위의 회복을 위해 어느 때보다 각자의 성찰과 반성 그리고 더욱더 깊이 있는 철학적 사유가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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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5-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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