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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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전해주는 신앙인의 삶

[한민택 신부의 금쪽같은 내신앙] (121) 희망을 증언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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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희년이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다. 올해가 지나면 25년 만에 오는 일반 성년은 2050년이나 되어야 다시 찾아올 것이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25년, 어떤 이에게는 ‘마지막’ 희년이 될지도 모르는 2025년, 남은 희년을 보내기 위해 어떤 다짐을 해야 할까.

다시금 올해 희년의 취지를 떠올려본다. ‘희망의 순례자들’이란 주제를 정한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그리스도인이 희망의 순례자가 되어 순례길에서 발견한 희망을 세상 사람에게 전해주어 세상을 희망으로 밝혀주기를 바라셨다.

이러한 취지는 이 시대가 희망의 부재로 고통받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현대인은 첨단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편리한 생활을 하고 있지만, 그러한 발전이 곧바로 희망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 점을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오히려 사회와 문화의 세속화가 급속도로 치달음에 따라, 사람들 특히 젊은 세대가 종교와 신앙에서 멀어지게 되었고, 그로 인해 진정한 희망을 시야에서 잃게 되었다.

최근 대두되는 안락사 문제는 희망을 발견하지 못해 방황하는 이 시대의 자화상을 보여준다. 병으로 인해 극심한 고통을 겪을 때, 병이 나을 가망이 없을 때, 남아 있는 인생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의미의 부재는 희망의 부재로부터 온다. 아무리 의술이 발달한다 하더라도 궁극적 희망이 되어주지는 못한다.

사실 과학은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해 어떠한 사실도 밝혀주지 못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과학기술의 발전에 눈이 어두워 오직 현세에서의 물질적·감각적 행복에만 희망을 두고 살려고 한다. 그로 인해 희망을 찾을 수 없어 괴로워하고, 막다른 골목에서 엉뚱한 해결책을 갖고 고민하는 것은 아닌지.

교황님께서 이 시대를 희망의 부재로 진단하신 것은 정확했다. 젊은이·어른 할 것 없이 희망의 부재로 불안해하고 두려워하며, 그래서 점이나 타로·역술·무속 등에 기대어 희망을 부여잡으려 애쓰고 있다. 그러나 그 어떤 것도 진정한 희망이 될 수 없음을 인간 스스로 잘 알고 있다. 이 시대 사람들이 빠진 딜레마 상황인 것이다.

오늘날 교회와 신앙인에게 맡겨진 복음 선포 사명을 한마디로 말하라면, 이처럼 희망을 잃은 세상 사람들에게 하느님께서 주시는 희망을 전해주고, 그들이 절망에서 다시 일어나 희망의 길을 걷도록 인도해주는 것이라고 답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우리는 세상 사람들에게 어떠한 희망을 어떻게 전해줄 것인가? 희망에 대한 ‘이론’을 제시하기보다 삶을 통해 희망을 ‘증언’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이런 생각으로 우리의 평범한 신앙생활을 바라보면, 놀랍게도 교회와 신앙인의 모든 활동에 희망이 담겨 있음을 깨닫게 된다. 특히 희년에 전대사를 받기 위해 행하는 실천들 모두 희망을 전하는 것들이다.

교구가 정한 희년 순례지·사적지 등을 순례하며 전대사를 청하고 죽은 이들에게 양도하는 것, 교황청 내사원에서 지정한 ‘자비의 활동들’을 행하며 전대사를 청하는 것, 병자를 방문하고 함께 기도드리는 것, 묘지를 방문하여 죽은 이를 위해 기도하는 것, 장례식장 등을 방문하는 것, 죽은 이를 위한 기도와 미사 봉헌, 절제와 희생의 실천 등?. 이 모두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행하는 실천들이지만, 그 안에는 세상이 갖지 못한 희망이 담겨 있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의 그러한 실천을 통해 희망을 나누어 받기를 원한다. 남은 희년, ‘희망의 활동들’을 통해 사람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 그들에게 희망을 전해줄 수 있으면 좋겠다.

한민택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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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5-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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