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성인 대축일이 천상 교회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거룩한 영혼들을 기억하는 것이라면, 위령의 날은 세상을 떠난 모든 영혼 특히 사랑하는 가족들과 이웃들 그리고 연옥 영혼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날입니다.
신앙인은 오늘 욥기의 욥처럼 하느님을 뵙고 싶어 합니다. “이 내 몸으로 나는 하느님을 보리라.”(19,16) “내 눈은 다른 이가 아니라 바로 그분을 보리라.”(19,27) 친구들을 만난 후 욥은 인간의 그럴듯한 왜곡된 가설의 허무함을 깨닫고 이젠 더욱 하느님을 뵙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천주 성부의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산 이와 죽은 이의 통교를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인들의 영혼을 기리고 곧이어 모든 죽은 영혼을 기억하고 아울러 불쌍한 영혼을 특별히 기억하면서 나의 죽음도 응시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대단해 보이고 내 온 신경을 쏟아붓게 만드는 것들이 죽음 앞에서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한다는 것을, 결국엔 우리 모두 그분을 뵙겠다고 나설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깨닫게 된다는 것을 묵상하는 날입니다. 그래서 세상을 떠난 영혼들과의 유대가 결코 남의 일이 아닙니다. 바로 시간의 차이일 뿐 나의 처지일 테니 말입니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살아가며 그 안에서 서로 온갖 것을 주고받습니다. 죽음 이후의 생명을 믿고 희망하는 교회는 이러한 관계가 세상을 떠난 이들과도 지속된다고 믿습니다. 우리는 천상 교회와 지상 교회 그리고 연옥에 있는 이들이 하나임을 기억하며, 서로 기도해 주고 영적인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음을 믿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로마서에서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5,5)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졌기 때문에, 우리는 성령을 통해서 그 희망이 실재라는 것을 믿고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사랑 덕분에 고통은 한시적으로 지나가고 하느님께서 주시는 복락은 영원하여 언젠가는 모든 성인 대축일이 우리 각자가 포함되는 축일이 될 것임을 믿습니다.
결국 위령의 날은 희망을 지니는 날이고 우리의 일상에서부터 그런 희망을 실천하는 날입니다. 육신의 부활에 대한 믿음은 하느님과 일치하는 삶 안에서 일어나는 실제적 사랑의 체험을 전제합니다. 그래서 참된 행복에 실천적으로 도전해 보는 하루가 되면 좋겠습니다. 마음이 가난해지고, 나와 남의 인생의 슬픔을 좀 더 깊이 알고, 온유한 마음을 갖고, 의로움을 추구하며, 자비롭게 사람을 대하고, 마음을 깨끗이 하고, 주변에 평화를 이루고, 박해를 무릅쓰고, 모욕당하고 거짓으로 사악한 말을 들어도 즐거워하도록 참 행복에 도전하는 또 한 번의 출발점이 되는 위령의 날로 보내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