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제1독서의 예언자 에제키엘이 살았던 시대는 지금부터 260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기원전 587/6년 이스라엘은 가나안 건국 이래 처음으로 완전히 주권을 잃고, 많은 백성이 정복국인 바빌론으로 끌려갑니다. 에제키엘이 활동한 장소도 이스라엘이 아닌 바빌론 땅이었습니다. 그는 자신보다 먼저 예루살렘에서 활동을 시작한 예레미야와 더불어 ‘성전과 예루살렘 파괴’라는 충격적 사건을 극복하고 이스라엘 신앙을 유지하는 데 결정적 공을 세운 예언자입니다.
그는 하느님과 맺은 계약을 파기한 백성의 죄를 들며 예루살렘이 무너지기 전까지는 혹독한 심판을 예고하였지만 멸망이 실현된 뒤에는 제2의 탈출, 곧 ‘바빌론 탈출’을 예고하여 동족을 위로하고 회복된 미래에 대한 청사진을 보여주었습니다. 말하자면 이스라엘은 계약 파기 죄로 약속의 땅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되지만 그것이 끝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이런 메시지 가운데 하나가 바로 에제키엘서의 절정에 자리한 오늘 제1독서의 내용입니다.(에제 47,1-12) 이는 에제키엘이 환시 가운데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보고 그 생명력을 예언한 것입니다.
이 환시에 따르면, 이스라엘이 회복되는 시대에 성전이 재건되면 새 성전에서 생명수가 흘러나와 큰 강을 이룰 것입니다. 그 강은 지나는 곳마다 모든 것을 살아나게 하며 죽음의 바다인 사해(死海)까지 닿아 그곳 역시 살아나게 합니다. 제1독서 8절에 언급된 ‘바다’가 사해임은 ‘아라바’라는 지명에서 알 수 있습니다. 아라바는 예루살렘과 가까운 동편 계곡의 이름이며 사해는 성경에서 ‘아라바 바다’(신명 3,17; 여호 3,16 등)라는 이름으로 종종 등장합니다.
사해의 부활 예고는 당시 백성에게 매우 적절한 메시지였습니다. 왜냐하면 나라를 잃고 유배 생활하던 그들은 죽음의 바다에 빠진 듯이 절망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사해는 죽음 같은 유배살이를 상징한 곳입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백성을 용서하시고 성전으로 다시 돌아오시면 성전에서 생명수가 솟아나 사해를, 곧 죽은 듯 보인 이스라엘을 부활시켜 주리라는 메시지인 것입니다. 이런 배경에서 성전수 신탁에는 에덴동산 모티프가 많이 쓰입니다.
첫 번째 모티프는 산입니다. 에덴이 ‘하느님의 거룩한 산’이라 일컬어지듯(에제 28,13-14; 창세 2,8 참조) 에제키엘서 40장 2절과 43장 12절에 따르면 새 성전도 높은 산 위에 봉헌됩니다.
두 번째는 과일나무입니다. 에덴동산에 과일나무가 많이 자랐듯이(창세 2,9 참조) 제1독서의 12절에도 성전 생명수로 말미암은 과일나무, 시들지 않고 다달이 새 과일을 내놓는 나무들이 언급됩니다.
세 번째는 강입니다. 에덴동산에서 흘러나온 강 하나가 네 줄기로 갈라져 흘렀듯이(창세 2,10 참조) 제1독서에서는 성전에서 솟아난 물이 강이 되어 흘러갑니다. 히에로니무스와 안티오키아의 테오도루스는 생명을 주는 이런 성전수에서 죄를 용서받고 새로 태어나도록 돕는 세례수를 떠올리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성전수가 큰 강이 되어 흘러간다는 이 예언은 흥미롭게도 예루살렘의 실제 지형을 충실하게 반영한 신탁입니다. 사해는 예루살렘에서 동쪽으로 30km가량 떨어진 곳으로서 바다 밑 400m에 자리합니다. 그에 비해 예루살렘은 해발 750m의 고지대라 사해와 고도차가 1km 이상입니다. 그러므로 성전수가 아라바로 내려가 강을 이룬다는 제1독서의 묘사처럼, 지금도 예루살렘에 비가 내리면 고도가 낮은 아라바 계곡으로 모여 휘몰아치는 강처럼 사해로 흘러들게 됩니다.
다만 에제키엘이 전달한 새 성전 신탁은 바빌론 유배 뒤에도 문자 그대로 실현된 건 아니었습니다. 더구나 에제키엘서에서는 재건될 성전을 묘사하기만 할 뿐 그걸 지어야 한다는 명령도 빠져 있는데요. 의미심장하게도 이후 예수님께서 당신 몸이 성전이 되리라고 예고하십니다.(요한 2,19-22 참조) 교부들은 에제키엘이 예언한 새 성전이 마지막에 도래할 하느님 나라, 곧 이상적 교회를 표현한다고 보았습니다. 어쩌면 에제키엘은 실제 성전이 아니라 시대적으로 요구되는 관념상의 성전으로 예고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이를 성자이신 그리스도께서 실현하셨고요.
이처럼 제1독서의 성전수도 성전이 되실 예수님에게 적용되기에 이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그 속에서부터 생수의 강들이 흘러나올 것”이라 합니다.(요한 7,37-38 참조) 에제키엘서의 새 성전 환시는 요한 묵시록 21장에서 22장의 천상 예루살렘 묘사에도 큰 영향을 주었는데, 그 가운데 성전수 신탁은 하느님과 어린양의 어좌에서 흘러나오는 생명수의 강 이미지에 반영되기에 이릅니다.(묵시 22,1-2 참조)

글 _ 김명숙 소피아(광주가톨릭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