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하늘을 수놓은 별들은 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천체이고, 그 반짝임은 시간적으로 상당히 오래전의 광채이다. 지금 보는 별은 이미 소멸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시야에 포착된 별 하나가 무언의 신호처럼 자신을 향해 반짝인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 이 순간, 확률 차원에서 ‘수많은 별 가운데 하나’인 그 별은 관계 차원으로 진입하여 ‘단 하나’의 별이 된다.
공간과 시간의 격차에도, 별은 그 빛을 통하여 ‘나를 향해 반짝이는 별’로 다가와 강한 유대감을 형성한다. 이 결속력은 멀리 있는 행성을 가까이 있는 행성으로, 과거의 빛을 현재의 빛으로 재구성한다. 별과의 유대감은 저기와 여기(원근), 세월과 현실(시차)의 구분을 해체한다.
또 별은 현재와 미래를 잇는 다리가 되어준다. 별과의 유대감은 내일과 다음날의 밤하늘에서도 반짝이는 별을 찾게 하기 때문이다. 특정해놓은 ‘그 별’이 아니더라도 별이 방출하는 ‘그 반짝임’을 통하여 유대감을 향한 갈망이 충족되길 바란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반짝이는 별을 통해 과거를 오늘 보고 있고, 현재를 미래에도 보려고 한다.
성경은 약속-성취의 도식으로 전개되는 이스라엘의 고유한 역사를 기록한다. 일직선 시간 개념을 적용하는 유사종교의 접근 방식처럼 약속-성취의 도식을 삼시대 구분(성부 시대→성자 시대→성령 시대)으로 해석하면, 그리스도교 신앙의 오류가 발생한다. 삼위일체 신앙에 따르면, 창조로부터 개시하는 구약 시대에 성부만이 아니라 성자와 성령이 공동으로 활동했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정점에 이른 신약 시대에 성자만이 아니라 성부와 성령이 공동으로 활동하였다. 이는 ‘참 인간’으로 오신 구세주, 성자의 육화 신비에서도 감지된다.
아기 예수님의 탄생 보도와 연결되는 두 가지 수식어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잉태’와 ‘동정 마리아를 통한 잉태’이다. 사도신경은 이를 “성령으로 인하여 동정 마리아께 잉태되어 나시고”라고 표명한다. 교회 역사에 성모 공경이 활성화되면서 두 가지 수식어 중 마리아의 동정성이 주목받았다. 그러나 성자의 강생에서 일차적 요인은 성령의 역할이며, 이를 지원하는 이차적 배경이 마리아의 동정성이다. 성령은 요셉과 약혼한 마리아에게 신앙의 확신을 제공하였고, 마리아의 ‘순명과 결단’(동정)으로 성부로부터 파견된 성자가 세상에 출생하였다.
성부로부터 파견되어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된 성자의 강생은 세상의 시작부터 ‘함께 있었던’(먼) 하느님, 지금 ‘함께 있는’(가까운) 하느님, 보호하고 인도하며 ‘함께 있을’(어디서나) 하느님을 우리에게 계시하였다. 주님 성탄 대축일의 복음은 이를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요한 1,14) 한처음부터 ‘아버지 하느님과’ 함께 있었던(먼) 아들 하느님이 ‘우리 사람과’ 함께 있는(가까운) 아들 하느님이 되셨고, 어둠 속에 헤매던 우리가 함께 있을(어디서나) 빛을 찾았다.
‘반짝이는 별’은 과거로부터 ‘있었던’ 별이고, 지금 보고 ‘있는’ 별이며, 내일도 밤하늘을 수놓고 ‘있을’ 별이다. 성탄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을 바라보며 이렇게 인사해 보면 좋겠다. ‘메리 크리스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