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자 없는 양들’(마르 6,34 참조), ‘길 잃은 양들을 찾는 목자’(마태 10,6 참조)의 비유에서 확인되듯이, 복음서 안에서 목자는 보호자 혹은 지도자를 대표한다. 특히 요한 복음은 예수님을 “착한 목자”(10,11)로 규정하면서 양들을 위해 목숨까지 내어놓는 헌신적인 사랑을 강조한다. 그런데 루카 복음이 단 한 차례 거론하는 목자는 비유나 역할로 진술되지 않고 아기 예수님의 탄생 보도 속 등장 인물로 설정된다.
“밤에도 양 떼를 지키는”(루카 2,8) 목자들은 양 떼 이외에 관심이 없을 정도로 직분에 충실한 인물을 표상한다. 주님의 천사로부터 구세주의 탄생 소식을 접한 목자들은 본연의 일을 잠시 멈추고 베들레헴으로 향했으며, 부모와 함께 있는 아기 예수님을 근거리에서 목격했다. ‘양 떼 안에 있는’ 목자들이 ‘양 떼 밖에 있는’ 구유에 누운 아기를 만났으며, 이 만남을 계기로 하느님의 업적을 찬양하였다.
자신이 축적한 관계·권한·재산을 지키는 행위는 긍정적인 의미로 성실과 책임을, 부정적인 의미로 집착과 장악을 증명한다. 그런데 특정 대상·사물에 대한 집중은 ‘또 다른’(새로운) 면을 외면하게 만든다. ‘듣고 싶은 것만을 듣고, 보고 싶은 것만을 보는’(지키려는) 이는 이해관계를 떠난 ‘그냥 그대로 들음’(경청), ‘그냥 그대로 봄’(관조)에 익숙하지 않다.
그냥 그대로 듣고 보는 이에게 선물처럼 다가오는 종교적 체험은 ‘경탄’이다. 이는 환청이나 환시와 같은 기이한 현상만이 아니라 목자들이 보았던 ‘부모와 함께 있는 한 아기’의 장면과 같은 평범하고 일상적인 관계·사건·풍경으로부터도 가능하다. ‘밤낮없는 지키기’를 잠시 멈추면 ‘그냥 그대로 듣고 보기’가 시작되고, 이를 통해 ‘하느님이 들려주시고 보여주시는 업적’에 대해 경탄할 수 있다.
일상의 소중한 가치들을 신실하게 ‘지켜내기’, 그냥 그대로 듣고 보며 하느님의 업적에 ‘경탄하기’, 이 둘 사이의 유기적인 순환을 잇는 연결고리가 성모 마리아의 ‘말씀을 간직하고 되새기는 태도’(루카 2,19 참조)다. ‘말씀대로 이루어지길’(루카 1,38 참조) 바란 마리아가 아들 예수님을 통해 ‘하느님 그분’(하느님이 들려주시고 보여주시는 업적)을 그냥 그대로 듣고 보았기 때문에, 교회는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하느님의 어머니’(천주의 성모)란 호칭을 수여한다. 마리아는 그리스도의 전 생애를 통해 드러난 하느님의 놀라운 업적에 경탄하였다. 이 경탄은 마리아의 우여곡절로 가득한 생애에 있어서 불가항력적 동력이었다.
최선을 다해 노력함으로써 수고에 합당한 열매를 ‘지켜내는 삶’과 최선을 잠시 접고 그냥 그대로 듣고 봄으로써 하느님의 업적에 ‘경탄하는 삶’의 조화와 균형을 ‘말씀을 간직하고 되새기는 삶’으로 제시한 ‘천주의 성모’ 마리아를 기념하며 출발하는 2026년에, 목자들이 들었던 천사들의 찬미 노래(루카 2,14 참조)를 인용하는 대영광송의 시작 구절이 이 세상 한가운데서 성대히 울려 퍼지길 고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