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상담의 초월 기법을 가르치다 보면 사람들이 오해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초월 기법은 절대적 존재자에게 의존해 인간을 치유하는 종교적인 상담 방법의 하나라는 것이다. 그러나 초월 기법은 이것과는 무관하며, 그보다는 인간 본성과 인간의 삶,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철학적 통찰에 근거해 인간을 치유하는 철학상담의 고유한 방법이다.
기본적으로 인간이 스스로 자기를 규정하는 자유로운 존재로서 ‘정신의 초월성’에 근거한 자기 초월을 통해 삶의 문제를 해결해 나간다는 철학적 통찰에 근거한다. 초월 기법의 핵심은 인간의 본성인 ‘초월성’에 있으며, 이 초월성은 무엇보다도 정신의 ‘자유’와 ‘개방성’에서 비롯된다. 인간은 완성된 존재가 아니라 완성을 향해 가는 존재로서 삶 안에서 자기를 실현하며, 이때 자유로운 정신 안에서 끊임없이 자기를 새롭게 규정하는 가운데 자기를 넘어서는 초월의 경험을 하게 된다.
초월 기법의 본질은 초자연적이며 이데아적인 초재적 실재를 지향하는 데 있지 않으며, 오히려 인간이 유한한 존재임에도 자유로운 정신을 통해 자기 한계를 끊임없이 넘어서는 ‘초월적 경험’에 있다. 초월 기법은 무엇보다도 제약된 조건 속에서도 거기에 자기를 내맡기지 않고 끊임없이 이를 넘어서려는 인간의 정신과 삶의 역동성에서 그 특성이 잘 드러난다.
인간 정신의 역동성은 본성적으로 앎을 추구하는 근본적인 ‘물음’에 기반한다. 정신적 존재인 인간은 끊임없는 물음을 통해 자기와 세계 사이의 인식론적 일치를 추구한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이를 통해 진리 인식에 이른다. 그러나 초월 기법에서 물음은 치유를 위한 시작이자 그 자체로 방법이 된다. 초월 기법의 물음은 단지 궁금증을 해소하려는 인식 차원에 한정되지 않고, 치유 차원의 더 본질적이며 근본적인 것을 지향한다. 즉 이 물음은 존재의 절대적 긍정과 그 의미 지평 위에서 실행되는 치유를 위한 이해의 근본 행위다. 그렇다면 철학상담에서 물음은 치유와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인가?
물음의 촉발은 자기가 근본적으로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직관하는 ‘무지의 앎’에서 시작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대체 언제 자기 자신이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일까? 소크라테스는 참된 지혜를 얻기 위한 각성으로 고대 그리스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에 새겨진 “너 자신을 알라”라는 격언에 주목한 바 있다. 우리가 물음을 던지는 것은 기본적으로 알려고 하는 것이지만, 초월 기법의 물음은 치유를 위한 출발점이자 그 자체로 치유의 과정이다.
이는 우리가 평소 자신의 무지를 의식하지 않고 살다가도 삶의 근본적인 문제에 직면할 때 비로소 이를 자각하고 진지하게 물음을 던지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이 물음은 우리 스스로 고통과 위기를 넘어서고 극복하려는 치유 행위다. 우리는 어떤 사건이나 사태 혹은 사물(사람)이 다가와 심기를 건드릴 때, 혹은 -이는 특히 상처·치유와 관련하여 중요한데- 한계 상황에 직면해 좌초하여 완전히 방향을 잃게 되었을 때, 비로소 이해에 다가서고자 물음을 던진다.
무엇보다 이 물음은 자기 존재와 삶 그리고 그 의미에 관한 물음과 직결된다. 정신과 의사 프랭클이 유다인 강제수용소에서 극한의 상황에 내몰리며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섰을 때 던졌던 존재와 삶의 의미 물음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