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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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묵상]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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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루카 복음에서 목자들은 천사로부터 메시아 탄생에 관하여 들은 말을 전해 줍니다. 그것을 들은 이들은 모두 놀라워하였지만, 마리아는 조금 다른 모습을 보입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다.”(루카 2,19)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긴 마리아의 태도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의미할까요? 먼저 루카 복음이 ‘간직하다’라는 뜻으로 사용한 그리스어 동사는 ‘쉰테레오’(συντηρ?ω)입니다. 쉰테레오는 어떤 상태를 잘 유지하고 지켜 ‘보존한다’라는 뜻의 ‘테레오’(τηρ?ω)에서 유래합니다.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 물이 포도주로 변화되어, 잔치가 끝날 때까지 좋은 포도주가 떨어지지 않게 되자 과방장은 신랑을 불러 말합니다. “누구든지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놓고, 손님들이 취하면 그보다 못한 것을 내놓는데,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남겨 두셨군요.”(요한 2,10) 여기서 ‘남겨두었다’라는 말이 테레오인데, 포도주를 양적 차원에서 남겨두었다는 것만이 아니라, 포도주의 질적인 상태까지 변하지 않고 그 본래의 맛과 향이 잘 ‘보존되었다’라는 걸 의미합니다.


이 테레오에 ‘~와 함께’라는 뜻을 가진 접두사 ‘쉰’(σ?ν)을 덧붙여, 마리아가 ‘마음속에 간직했다’라는 것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마리아는 목자들이 전한 말을 본질적인 차원에서 자기 마음속 깊은 곳에 보존했다는 것이지요. 그녀는 천사의 말을 당장은 이해하지 못했지만, 자신을 온전히 그 말씀에 일치시켜, 말씀의 본질적인 내용을 훼손하지 않으려고 애썼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마리아에게 간직한다는 것은 간직하려는 대상에 나의 생각과 뜻을 일치시키는 것까지 의미합니다. 내가 그 안에 머물면서 반복해서 기억하는 것입니다. 마리아의 이 특별한 간직함은 끊임없는 ‘기억의 현재화’로서 ‘되새김’을 의미합니다. ‘곰곰이 되새겼다’라고 번역되는 ‘쉼발로’(συμβ?λλω)가 쉰테레오 뒤에 함께 사용된 건 우연이 아닙니다.


쉼발로는 원래 ‘의논하다, 함께 이야기하다, 협의하다’ 등의 뜻을 가진 단어입니다. 이는 본래 주사위를 던져 제비를 뽑거나, 씨앗을 땅에 뿌린다거나, 그물을 바다에 칠 때와 같이, 무엇을 ‘던진다’라는 뜻을 가진 ‘발로’(β?λλω)에서 유래하지요.


마리아는 목자들이 전한 말을 마음속에 간직하면서, 동시에 지금까지 자신을 둘러싸고 일어난 이해하기 힘든 사건들에 숨겨진 의미를 파악하고자 여러 가지 질문을 ‘던져’보았을 것입니다. 자기 자신에게 던지는(β?λλω) 의미 물음은 끊임없이 자신과 대화를 나누게 한다는 점에서, 내가 나와 함께 의논하고 이야기하는 것(συμβ?λλω)입니다. 인간은 자신이 이해할 수 없거나 숨겨진 의미를 찾으려고 할 때, 곰곰이 되새기게 되어 있습니다. 마리아도 그랬습니다.


사실 마리아가 ‘곰곰이 되새긴’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가브리엘 천사가 예수님의 탄생 예고를 전할 때에도 마리아는 이미 “이 인사말이 무슨 뜻인가 하고 곰곰이 생각”(루카 1,29 참조) 하였고, 잃었던 소년 예수를 성전에서 다시 찾았을 때도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루카 2,51 참조) 하였었지요.


마리아는 항상 곰곰이 생각하고, 곰곰이 되새기며,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한 여인입니다. 마리아는 모든 것이 이해하기 힘들 때마다 그 안에서 그분의 뜻을 찾으려고 애썼습니다. 그리고 내 뜻이 아니라 그분께서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지리라고 믿으며 순종하였습니다.


간직하고 되새긴다는 것. 그것은 결국 ‘순종’한다는 것입니다. 마리아의 순종은 끊임없이 주님의 뜻과 말씀의 의미를 찾는 일이었습니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을 기념하는 우리는 마리아의 그 모범을 따라 힘겨운 일을 마주할 때마다 그 안에 숨겨진 주님의 뜻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순종해야 합니다. 순종은 그분 마음에 내 마음을 두는 거룩한 행위이며, 내 마음이 주님 마음 안에서 기뻐 뛰노는 것입니다.



글_ 김정일 안드레아 신부(의정부교구·서울대교구 대신학교)
2011년 사제품을 받았으며, 프랑스 파리가톨릭대학교에서 기초신학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의정부교구 신앙교육원 부원장, 의정부교구 고양동본당 주임을 거쳐 2024년부터 서울대교구 대신학교 5학년 원감으로 소임하고 있다. 2025년 「애니그마, 말씀의 수수께끼1」을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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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5-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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