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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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묵상] 주님 공현 대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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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동방 박사들은 별을 따라 아기 예수님을 찾아와 경배한다. 그들은 왜 유다인이 아닌 동방 박사들이었을까? 그리스도께서 모든 인류의 구원자이시기 때문이다. 이는 구원이 혈통을 넘어, 진리를 찾는 모든 이에게 열려 있음을 보여준다. 별은 낮에도 빛나지만, 박사들을 인도하며 아기 예수님이 있는 곳 위에서 멈췄다. 하느님은 각 사람의 수준과 처지에 맞는 방식으로 다가오시는 데, 점성술과 자연법칙에 익숙했던 박사들에게 ‘별’이라는 자연적 표징을 통해 그들을 초자연적인 신앙의 신비로 인도하셨다. 우리 삶의 일상적인 사건들도 우리를 하느님께로 인도하는 별이 될 수 있다.


동방 박사들이 바친 세 가지 예물은 그리스도의 세 가지 본성을 고백한다. 황금은 세상을 다스리시는 진정한 왕이심을 인정하는 것이다. 유향은 그리스도의 신성을 상징한다. 그분이 참 하느님이심을 고백하는 흠숭의 표현이다. 몰약은 그리스도의 인성 곧 수난과 죽음을 상징하는데, 인간의 죽음을 썩지 않게 보존한다. 그러므로 몰약은 우리를 위해 죽으실 구세주의 인성을 미리 보여준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말한다. “우리는 왕이신 그리스도께 사랑의 ‘황금’을, 기도라는 ‘유향’을, 육신의 욕망을 내려놓는 절제라는 ‘몰약’을 바쳐야 한다.”


동방 박사들이 바친 세 가지 제물은 한편 오늘 우리에게 내적인 마음의 태도를 준비하도록 인도한다. 황금은 물질의 헌금보다는 내 삶의 가장 귀한 가치와 우선순위를 주님께 두는 것이다. 곧 나의 시간, 재능 그리고 돈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 하느님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내 인생의 왕좌에 누구를 앉히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내가 “예수 그리스도”라고 답하는 삶이 오늘날의 황금을 바치는 삶일 것이다.


유향은 성전에서 하느님께 올리는 제사에서 쓰였다. 이는 지적인 영혼이 하느님께 고양되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현대의 삶에서 소음과 분주함 속에서 마음을 모아 하느님을 향하는 기도 시간이 유향의 내적 의미이다. 하루 중 단 5분이라도 세상을 향한 관심을 내려놓고, 내 안에 현존하시는 주님을 바라보는 ‘관상’의 향기를 피워 올리는 것이다. 나의 모든 활동이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기도가 되게 하는 것이 현대의 유향이다.


몰약은 시신의 부패를 막는 데 쓰였으며, 그래서 그리스도의 고통스러운 수난을 상징한다. 나의 이기심과 탐욕이 영혼을 부패시키지 않도록 스스로 절제하는 희생이다. 삶에서 마주하는 피할 수 없는 고통과 시련을 불평 없이 받아들이고, 이를 이웃을 위한 사랑의 도구로 승화시키는 것이다. 또한 타인의 잘못을 용서함으로써 내 안의 미움이 흘러가도록 하는 사랑의 행위가 바로 주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내적인 몰약이다.


왕권으로서 황금이 내 우선순위의 봉헌이 되고, 신성을 고백하는 유향은 일상에서 하느님을 기억하고 대화하는 기도의 봉헌이며, 인성의 수난을 뜻하는 몰약은 자기 욕망의 절제로 생기는 고통을 인내로 승화하는 희생 봉헌을 뜻한다. 이렇게 동방 박사들이 주님께 봉헌하는 세 가지 보물들은 오늘의 우리가 주님께 드릴 영적인 선물이다.


박사들이 보물 상자를 열어 예물을 드렸듯이, 우리도 마음의 보물 상자를 열어 가장 귀한 것을 드려야 할 것이다. 주님은 우리의 물건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원하시기 때문이다.


복음은 꿈에 지시를 받은 박사들이 “다른 길로 자기 고장에 돌아갔다”고 전한다. 이것은 ‘회심’의 전형이다.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은 이전과 똑같은 길 곧 죄의 길, 세속적인 길로 돌아갈 수 없다. 그리스도를 뵌 후에는 반드시 ‘새로운 길’을 걸어야 한다. 오늘의 동방 박사인 우리가 헤로데의 세속적 권력과 탐욕의 길을 피하고, 하느님의 뜻에 따른 새로운 삶의 방식을 선택해야 함을 의미한다.


오늘 주님 공현 대축일을 지내며 우리 자신에게 질문을 해본다. “나는 내 삶에서 떠오른 별을 무시하고 있지는 않은가? 나는 나의 황금인 재능, 유향(기도), 몰약(희생)을 기꺼이 준비하고 바치고 있는가?”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별’과 같은 질문을 통해, 동방 박사들처럼 주님 앞에 영적 보물을 바치며 엎드려 경배하도록 인도한다.



글 _ 곽승룡 비오 신부(대전교구 태안본당 주임)
1989년 사제품을 받았으며, 1996년부터 대전가톨릭대학교에서 교의신학을 강의했다. 2019년 호주 시드니 한인본당 주임 신부를 맡았고, 2023년부터 대전교구 태안본당 주임 신부로 사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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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5-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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