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월 기법에서 물음은 ‘감성·이성·영성’의 3가지 단계로 실행된다. 감성과 이성과 영성은 인간의 정신이 자기를 표현하는 3가지 핵심 기능이다. 정신적 존재인 인간의 자기표현은 바로 이 정신의 3가지 기능이 통합적으로 작용할 때 비로소 완전하게 발휘된다. 이 중 어느 하나라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문제가 발생한다. 즉 어느 하나가 결핍될 경우, 지나치게 감정적이며 비합리적인 사람이 될 수도 있으며, 반대로 감정이 둔감하여 공감 능력이 없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또한 영적으로 무의미나 공허에 빠질 수도 있다.
초월 기법의 물음은 우선 외부의 사건이나 사태를 통해 수동적으로 제기된다. 외부의 사건이나 사태는 내 밖에 있는 것으로서 그 자체로 항상 나에게 저항하는 힘으로 다가온다. 이것이 지각과 함께 우리의 감성을 건드리고 감염시키면서 기쁨과 슬픔, 분노와 화, 두려움과 공포 등의 다양한 ‘감정(느낌)’과 함께 나의 ‘정서(격정)’와 ‘기분’을 이끈다. 이렇게 감성은 수동적이지만 나의 마음에 직접 영향을 끼치는 매우 중요한 기능이다. 우리가 삶에서 물음을 던지는 것은 바로 이 감성에서 시작된다. 평온하다가도 무엇인가 나에게 저항적으로 다가올 때 이는 우선 우리의 감성을 자극하고, 다양한 감정을 표출하게 만든다. 외부 사물과 함께 있는 우리는 필연적으로 항상 다양한 감정이 표출될 수밖에 없는 격정(정서)적 상황 속에 놓여 있다. 마음이 아픈 것도 사실 이 격정에서 비롯된다. 그러므로 평온해지기 위해서는 격정을 잘 다스려야만 한다.
고대 스토아 및 에피쿠로스 학파의 철학자들은 이를 다스리기 위해서 철학적 훈련을 거듭했다. 서로마 제국을 멸망시킨 동고트 왕국의 집정관이자 철학자였던 보에티우스(480~524)는 동로마 제국과 내통했다는 정적들의 모함으로 사형 선고를 받은 후 감옥에서 쓴 「철학의 위안」에서 ‘철학의 여신’(지혜)과의 대화를 통해 마음의 격정(분노)을 다스리고 평온을 얻고자 하였다.
철학상담의 초월 기법에서 격정 속에서 던지는 물음은 감성을 통해 제기된 물음임과 동시에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감정을 다스리는 치유의 과정이다. 우리가 평소 고통스러운 것은 바로 부정적인 감정에 매몰되어 있기 때문이다. 부정적인 감정에 압도당하는 순간 할 수 있는 일은 매우 제한적이다. 평온을 얻기 위해서 할 일은 오로지 감정을 순화하는 것이다. 물론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다행스러운 것은 감정이 ‘수동적’이라는 사실이다. 이것이 함축하는 바는 경험적 대상과 직접 접촉하지 않는 한, 감정 또한 자연스럽게 순화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거리두기’는 부정적인 감정에서 비롯된 상처의 치유 과정을 위한 첫걸음이 된다.
상처의 치유를 위한 ‘거리두기’는 공간적-시간적인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나의 감정을 일으키는 사건이나 사태로부터 공간적으로 떨어져 있는 것은 감정을 순화시키는 데 매우 중요하다. 또한, 어떤 사건이나 사태이든 시간이 경과됨에 따라서 감정도 점차 순화된다. 물론 우리의 모든 경험은 항상 기억을 통해 언제든 다시 현재로 소환될 수 있는 만큼 근본적인 치유를 위해서는 경험과 기억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의미 부여가 요구된다. 이런 강한 의지를 통해서만 우리는 격한 감정에서 벗어나 새로운 단계로 초월해 갈 수 있다.
<다음 호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