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들이 너의 빛을 향하여, 임금들이 떠오르는 너의 광명을 향하여 오리라”라고 하는 이사야의 예언이 이루어진 걸까요?
오늘의 복음을 보면 동방에서 박사들이, 즉 이방 민족이요 이교도들이 구세주의 등장을 먼저 감지하고 모여듭니다. 이에 헤로데 임금을 비롯한 온 예루살렘이 깜짝 놀랍니다. 자기들이 선택된 민족인데, 어디서 엉뚱한 이방 민족들이 게다가 하느님을 모르는 이교도들이 유다인들의 임금으로 태어나신 분을 경배하러 왔다니? 이건 약속이 틀리는 거 아닌가? 그게 사실이라면 그들 눈에 이건 분명 반칙이요 선 넘은 행동입니다.
유다인들은 구세주의 등장을 부정하고 헤로데는 예언자가 기록해 놓았다는 베들레헴 작은 고을에서 나온 통치자를 제거하고 싶어 합니다. 하느님께 대한 믿음보다 나의 편견에 지배받을 때, 공현하신 주님을 몰라뵐 뿐 아니라, 우리를 구하러 오시는 그분을 오히려 위협으로 느끼며 지워버리려 들게 마련입니다.
넘치도록 풍성하신 하느님의 관대하심을 외면한 채 오로지 금지된 한 가지에 집중케 했던 게 창세기에서 원죄를 설명하는 소위 뱀의 유혹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금지 명령은 속박이 아니라, 인간과 하느님 사이에 놓인 사랑의 질서였던 겁니다. 사고가 잦은 길목에 놓인 위험표지판처럼 넘지 말아야 할 선입니다. 창조주로서 인간의 조건을 잘 아시기에 인간이 행복하기 위한 삶의 좌표를 제시하신 것이었습니다. 한계를 인정하지 않는 자유는 방종이고, 방종에서 나오는 독선과 아집은 멸망을 초래합니다. 그것은 하느님과의 관계를 단절시키고, 조화의 손상으로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진짜로 선을 넘는 짓입니다. 그렇게 선을 넘은 행동에서 비롯된 편견과 아집으로 하느님을 왜곡하고 날조하고 입맛대로 하느님을 조작하면, 창조주의 참사랑을 모르는 채 하느님을 원망하고 죽여 없애버리게 됩니다.
사도 바오로는 오늘 제2독서에서 “다른 민족들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복음을 통하여, 공동 상속자가 되고 한 몸의 지체가 되며 약속의 공동 수혜자가 된다는 것입니다”라고 가르칩니다. 천주 성부의 사랑을 전하시는 그리스도 예수님께 대한 믿음은 인간을 살리는 데 너무도 필요한 것이기에 별의 인도로 주님의 공현을 섭리하셨습니다. 넘치도록 풍요로운 하느님의 관대하심을 다 접어버리게 만드는 원초적 뱀의 유혹은 아직도 우리 안에 남아있고 아직도 이방인들에게까지 드러내시는 천주 성자의 등장에 무감각하거나 증오로 대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해마다 공현 축일을 기념하며 우리 자신을 다져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성령께 초점을 맞춰야겠습니다. 인간의 선 넘은 행동이, 우리 일상에서 수없이 일어나는 하느님의 드러나심을 선 넘은 행동으로 단죄하거나 그 존재를 부정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