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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상(베네딕토, 서울 명일동본당, 서울대교구 경찰사목위원회 선교사)
"저는 우울증이 있고 요즘은 자살하고 싶어요. 이번에도 나가서 죽으려고 했어요."
2006년도 가을 어느날 서울시내 한 경찰서에서 의경생활을 하는 젊은이가 얼굴이 초췌한 모습으로 찾아와 우리 선교사에게 죽고 싶다고 하소연을 털어놓았다.
이 젊은 대원은 평소에 늘 죽고 싶다는 말을 하고 다니다가 며칠 전 탈영을 하고 늦게 들어오는 바람에 온 경찰서를 발칵 뒤집어 놓은 대원이었다. 이즈음 다른 경찰서의 전경대원이 자살을 한 사건이 발생해 온 매스컴이 이를 보도하고 모든 경찰지휘관들 관심이 전ㆍ의경 대원들의 안전에 쏠려있던 시기였다.
우리 선교사는 상담사가 되어 이 대원의 닫힌 마음을 열기 위한 작업에 들어갔다. 말이 상담사지 거의 엄마와 같은 사랑을 주면서 온갖 심혈을 기울여 나갔다.
이 대원은 어렸을 때 부모로부터 "네가 무엇을 할 수 있겠니? 너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하는 심한 냉대를 받고 살아왔음이 확인됐다. 이에 따라 누구한테도 인정을 받지 못하고 성장해 오면서 심한 자괴감에 빠지게 되었다.
하루는 "나 같은 놈은 살아갈 가치가 없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늘도 2층에서 뛰어 내릴려고 했어요"라고 말할 정도였다.
우리 선교사는 그의 손을 잡고 같이 기도하며 그의 장점을 살려 칭찬을 해주고 말을 들어주는 등 몇 개월간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결국 이 젊은이는 환경에 잘 적응해서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왔고 지금은 신병후배들도 잘 이끌어주는 모범 대원이 되었다.
나는 경찰사목위원회에서 평신도 선교사로 활동을 하면서 최근에 만연해진 생명 경시 풍조사상을 많이 보고 느끼고 있다. 군생활의 일환으로 경찰에 들어오는 전ㆍ의경 대원들이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렇게도 무기력하고 자신을 잃고 생활하고 있는지 안타까울 때가 많다.
이는 아마도 군 입대 전 부모님 슬하에서 어려움을 이겨내는 인내력에 대한 훈련이 덜 되어있고 이와 함께 자기중심의 이기적 사고방식이 몸에 밴 결과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이러한 가운데 나는 경찰사목 활동의 일환으로 경찰서와 기동대의 전ㆍ의경 대원들을 대상으로 `생명의 소중함`에 대한 인성 교육을 담당하면서 그들에게 삶의 희망과 꿈을 하느님의 이름으로 전하고 있다.
"사랑하는 대원들! 우리 생명은 누구나 다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귀중한 존재입니다. 누구나 다 똑같이 하나밖에 없는 생명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누구나 다 평등하게 태어났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대통령이 따로 없고 큰 회사 사장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어렵게 태어난 우리들의 귀한 생명은 누구나 보람있고 가치있게 주어진 인생을 살아갈 권리가 있습니다."
처음 선교사로 인성교육을 시작했을 때 일반 지휘관들의 소양교육 정도로 생각하고 종종 조는 대원들도 있었다. 그러나 인간 생명의 중요성과 삶의 희망에 공감하면서 서서히 눈망울이 또렷해짐을 체험하고 이들의 마음이 움직이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우리의 보람과 행복을 실현해줄 자신의 희망과 꿈을 먼저 가지고 그 꿈을 향해 어려움을 헤쳐나가야 합니다. 희망과 꿈, 즉 삶의 목표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2002년 우리가 4강에 올랐던 한일 월드컵 축구때 관중석에 아름답게 새겨진 글씨 중에 우리를 감동시켰던 문구를 기억하세요? 바로 `꿈은 이루어진다`였습니다. 꿈은 꿈을 꾸는 사람에게만 이뤄집니다. 꿈을 꾸지 않으면 꿈은 결코 이뤄질 수 없습니다."
젊은 대원들은 월드컵 이야기에 벌써 한 마음이 된다. 그리고 초롱초롱한 그들 눈망울에서 밝은 미래를 향한 패기가 스며 나온다.
"꿈이 없는 사람은 세상의 조그만 어려움이 와도 인생을 포기하고 심지어는 자기의 목숨을 끊는 아주 잘못된 극단적인 결정을 하게 됩니다. 우리 대원들은 모두 미래의 대한민국을 이끌어 나갈 주역들입니다. 우리는 앞으로의 생명의 길을 보람있게 가기 위해 다가올 희망과 꿈을 굳게 간직하고 그 꿈을 향하여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해 지내야 합니다. 인생은 두 번 다시 오지 않습니다. 한 번 세상에 귀하게 태어난 우리 삶은 보람있고 가치있게 살아가야합니다."
약 1시간 동안의 강의가 끝나고 `우리의 희망을 향하여`라는 구호와 함께 젊은 대원들 모두가 두 주먹을 높이 들고 파이팅을 외칠 때면 이들에게 더 이상의 어두운 그림자는 찾아볼 수 없게 된다.
경찰사목위원회에는 오랫동안 준비된 많은 평신도 선교사들이 각 경찰서와 기동대에 파견돼 각종 시위 진압과 방범근무로 지쳐있는 전ㆍ의경 젊은이들에게 삶의 희망과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
서울지방경찰청 산하 수많은 대원들을 상대하다보면 온갖 문제가 발생하고 있으며 그때마다 우리 선교사들은 대원들의 심리 상담사로 활동하면서 자살 예방 및 생명의 중요성에 대한 상담활동을 수행하고 있다. 특별히 대원들의 안전사고 예방에 대한 경찰 지휘관들의 관심과 생명수호를 위한 우리 가톨릭의 신앙 캠페인이 궤를 같이하면서 새로운 시대에 걸 맞는 선교지평을 열어가고 있다.
특히 우리 선교사들은 부모 같은 마음으로 그들을 감싸안고 그들 마음을 어루만져 줄 때마다 눈물어린 감동의 사연을 접한다.
지난해 겨울 한 기동대에서 있었던 일이다. 부대 생활에 잘 적응을 못한 한 젊은이가 철야근무 중에 근무지를 이탈해 밤새 거리를 방황하다 새벽녘에 상가건물 교회에 들어가 자해를 하려고 칼로 손목을 두 번 그은 적이 있다. 그러나 다행히 생명은 건지게 되었다. 우리 선교사는 그 젊은이를 만나 마음을 진정시키고 함께 밥을 먹고 손잡고 기도하면서 용기를 심어주었다.
누나 셋에 외아들인 이 젊은이는 부모로부터 지나친 사랑만 받고 자란 탓인지 조금만 어려움이 닥쳐도 견디지 못하는 상태였다. 여러 차례 그 젊은이와 상담을 했고 지금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 성실히 근무를 잘하고 있으며 간혹 만나면 아주 반갑게 인사한다.
한 번은 어릴 때 세례를 받았으나 냉담을 하다 군대에 들어온 안드레아라는 신자대원이 정말 죽고 싶다고 하면서 우리 선교사를 찾아왔다.
이 대원은 25살에 입대해 막 훈련소를 마치고 나온 신병 대원으로 다른 대원들로부터 욕설을 듣고 인격적 모독을 당함으로써 아주 심한 자멸감에 빠져있었다. 자신보다 나이어린 대원들이 "사회에서 뭐하다 늙어서 군에 왔느냐?"며 놀려대고 무시해 정말 견디기 힘들다고 말했다.
우리 선교사는 엄마와 같은 따뜻한 마음으로 그 대원의 말을 들어주고 함께 했으며 지금은 우수 모범대원이 되어 경찰청 행정대원으로 발탁되어 근무를 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