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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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이 바다로 간 까닭은?

[군인주일 르포] 신부님이 바다로 간 까닭은?(해군 제1함대사령부 군종실장 주용민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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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청난 긴장 속에 주일미사는 생각도 못했던 장병들이 미사를 봉헌하며 숙연해질 때 주신부 역시 자신도 모르게 가슴 한켠이 먹먹해짐을 느낀다.
 
▶ 늘 자상한 마음으로 군인들과 동고동락하는 주신부는 함상의 군인들에게 따뜻한 아버지와 같은 존재다.
 
병사들 눈물 닦으며 함께 항해하는 ‘바다 아버지’

하루동안 대여섯 곳의 함정 순방은 기본
장병들의 고민 함께 나누며 성사 집행

“출항 30분전”

군함 내 스피커를 타고 나온 명령에 카포크 재킷(해군 구명조끼)을 입고 함정 좌우 양현과 갑판 위를 바삐 오가던 승조원들의 동작이 한결 빨라지기 시작했다. 쉴 새 없이 돌아가는 레이더와 간간이 들려오는 함내 방송이 긴장감을 높여간다. 무선 헤드셋을 낀 사관들의 움직임에서도 긴장이 묻어난다.

“출항 15분전”

다시 방송이 나오자 육상과 함정을 이어주는 현문이 순식간에 거둬들여지고, 곧이어 10명 남짓한 수병들이 달려들어 절도있는 구령과 함께 함정의 선수와 중앙부, 선미를 부두에 묶어두었던 홋줄(정박줄)을 선상으로 끌어올린다. 출항 15분전 신호는 이미 출항 준비가 완료된 상태를 의미한다.

“출항 5분전”

함교(bridge)에서 출항 준비 모습을 지켜보던 함장의 명령이 떨어지자 함정은 서서히 거대한 몸을 틀어 자신을 묶어두었던 부두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수병과 사관들의 일사불란한 동작에 멈춰진 듯했던 시간이 그제서야 제자리를 찾아가는 듯하다.

해군 제1함대사령부 군종실장 주용민 신부(해군 동해본당 주임)는 부두에 도열한 수병들 틈에 부동자세로 서서 함교에 위치한 함장에게 경례를 붙인다. 육중한 몸으로 평온하고 잔잔한 바다를 가르기 시작한 군함 위의 수병들도 갑판 위에 열 지어 선 채 건승의 의지를 다지는지 비장한 모습이다.

함정이 출항한다는 것은 모든 준비 태세가 완비됐음을 의미한다. 바로 언제든지 일전을 불사할 수 있는 전투준비를 완료했음을 뜻하는 것이기에 수병들 얼굴에서 묻어나는 긴장감은 괜한 것이 아니다. 4~5미터가 거뜬히 넘는 파도 앞에서도 물러설 수 없는 것이 바로 이들이 안고 떠나는 임무다.

함정의 출항 절차를 이채롭게만 바라보던 이들 가슴에도 비장미가 스며든다. 이들의 장도에 전략요충지인 울릉도와 독도를 비롯한 동해와 북방한계선(NLL)의 안녕이 달려있다는 생각에 저절로 두 손이 모아진다.

# 바다로 간 군종신부

높은 파도로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든 함상. 철썩이는 파도소리가 군함에 부딪혀 유난히 크게 들리는 오전 시간, 주용민 신부(대위)는 능수능란하게 갑판 위를 옮겨 다니며 장병들에게 악수를 건넨다.

오늘같이 해상의 날씨가 좋지 않을수록 주신부는 바빠진다. 함대사령부가 있는 동해항으로 수십 척의 함선들이 피항하기 때문이다. 훈련이나 긴급출동 등으로 종교활동을 할 수 없었던 장병들을 위한 그의 활동이 빛을 발할 시간이다.

이날 하룻동안 돌아본 곳만 해도 크고 작은 함정을 합쳐 대여섯 곳. 조용히 다가와 고해성사를 청하는 수병이 있으면 주신부는 병사의 손을 잡고 이목이 덜한 곳으로 이끈다.

병사들이 털어놓는 고민은 보통 그리 큰 문젯거리도 아니다. 군이라는 특수한 공간에 있다 보니 증폭돼 나타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저 누군가가 자신의 고민을 들어주고 얘기를 나눌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커다란 위안이 된다. 주신부의 토닥임에 강인해 보이기만 하던 병사들도 눈물을 짓기 일쑤다.

첫 영성체 후 군에 와서 처음 미사를 드린다는 젊은 병사나 고해성사하는 법도 몰라 머쓱해하는 장병, 영세 후 세례명조차 잊고 지내온 수병 등 신앙에서 멀어져 있던 이들마저 먼저 제 발로 찾아와 믿음을 갈망하는 곳이 바로 자신이 서있는 곳이라는 생각에 주신부는 자신의 발걸음이 닿지 않은 곳을 찾아다니느라 늘 분주하다.

주신부는 이런 장병들에게 효과적으로 다가서기 위해 군에서 마련한 집단상담사 교육과정도 두 차례나 이수하는 등 남다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처음엔 저 자신도 어떻게 병사들에게 다가갈 수 있을까 막막해서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특별한 게 없었다. 그 어느 때보다 삶에 대한 고민이 쌓일 병사들의 입장에서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병사들이 스스로 자신의 고민과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시간을 갖도록 이끌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김천함 서성덕(도미니코) 하사는 “신부님의 한 마디 한 마디가 삶의 의미를 새롭게 돌아보게 하는 힘을 지니는 곳이 군대”라면서 “해군의 특성상 군종사제의 활동이 더욱 의미있게 다가오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빠듯한 일상생활에 주일까지도 항상 비상 대기해야 하는 장병들의 처지를 누구보다 잘 아는 주신부의 작은 바람은 스스로에 대한 다짐이기도 하다.

“최소한 병사들이 성당에 편하게 나올 수 있는 환경이 되면 좋겠습니다. 주일미사에 나오기 어렵다면 앞으로도 더 많이 그들이 있는 곳을 찾아가서 만날 것입니다.”

주신부의 활약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종교활동이 어려운 출동함정이나 격오지에서 근무하는 장병들을 위해 적게는 3시간, 많게는 5시간 이상 배와 차를 갈아타면서 장병들을 찾아다니는 게 보통이다. 동부전선 최전방 철책선과 북방한계선(NLL)을 지키는 함정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 8월 구축함에 올라 꼬박 7박8일간 수병들과 함께 동해의 북방한계선을 바라보며 지냈던 일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함상 생활 동안 승조원들과 동고동락을 같이하며 해군들의 애환을 생생하게 돌아볼 수 있었던 체험이었기 때문이다.

새벽부터 일어나 승조원들과 함께 식사 준비를 하고 수병들과 함께 설거지를 하거나 장교들은 않는 페인트칠 등 작업도 함께하며 자연스레 그들의 고충을 들었다.

격실로 이뤄진 장병 숙소를 찾아다니며 일대일 상담이나 교육도 마다하지 않았다. 짬이 날 때마다 기관실을 비롯해 전투정보실, 당직실, 휴게실 등 함내 곳곳을 돌아다니느라 육상에서보다 바쁜 하루하루를 보냈다.

접적지역이라는 시공간이 가져다주는 엄청난 긴장 속에서 주일미사는 생각도 못했던 장병들이 미사를 봉헌하며 숙연해질 땐 자신도 모르게 가슴 한켠이 먹먹해지기도 했다.

200명에 이르는 승조원들 가운데 10여 명밖에 되지 않는 신자들이지만 애타게 목자를 갈망하는 그들의 눈빛을 보노라면 한 분기에 한 번인 함정 승조 활동이 오히려 손꼽아 기다려지기도 한다.

함정 갑판까지 파도에 잠기는 기상에서는 숙달된 수병이나 노련한 사관들도 배멀미에 시달려야 한다. 그리 길지 않은 기간이었지만 해군들의 어려움을 몸소 체험한 주신부는 지금도 날씨가 나빠지면 병사들 걱정부터 든다.

“오늘 멀미깨나 하겠군.”

파도가 거칠어져 가는 바다를 바라보는 주신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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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07-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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