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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충성!'을 다짐한다, '스미르나'

[바오로 로드를 가다] 9. 죽을 때까지 충실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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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성을 바친 스미르나 폴리카르푸스 주교 순교 기념성당.
한국에서 온 순례단의 미사가 봉헌되고 있다.
 
터키에 온 지 일주일이 지났다. 누적된 피로 탓일까. 어제 미열이 오르고 오한이 찾아왔다. 일찍 잠을 청한 덕에 오늘 몸 상태는 다행히 좋아졌다.

더 나은 순례를 독자들에게 전하라는 하느님의 섭리다. 터키에서 일주일의 시간을 보내고 나니 이제는 새벽마다 크게 울리는 아잔(이슬람의 예배를 알림) 소리에도 웬만해서는 잠도 잘 잔다. 얼굴도 검게 그을려 터키인이 된 듯하다.

“메르하바!(안녕하세요!)”

오늘 순례할 곳은 요한묵시록 일곱 교회 중 하나인 ‘스미르나’다. ‘충성’을 권고 받았던 교회. 꾸중을 들었던 지난 교회들과는 달리 스미르나는 격려와 지지, 칭찬을 받는다.

“너는 죽을 때까지 충실하여라. 그러면 내가 생명의 화관을 너에게 주겠다. 귀 있는 사람은 성령께서 여러 교회에 하시는 말씀을 들어라. 승리하는 사람은 두 번째 죽음의 화를 입지 않을 것이다.”(묵시, 2, 10∼11)

말씀은 우리에게 충실하라고 하신다. 예전 해설판 공동번역 성경에서는 ‘충실’ 대신 ‘충성’을 다하라고 표기했으니 ‘죽을 때까지 충성을 다하라’는 말로 이해해도 좋을 것이다. 죽을 때까지.

충성! 굳게 이마에 손을 가져다 대는 늠름한 군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군인이 국가에 충성을 다하듯 우리 수도자들도 하느님께 충성을 다한다고 굳게 다짐한 사람들이다.

바오로 수도회에 입회해 친해진 한 동료 수도자는 하느님께 ‘충성’을 다짐하고픈 마음에 서품제의에 ‘충(忠)’이라는 글자까지 수놓았다. 우리는 평생 주님만을 섬기겠다고 다짐했고 약속도 했다.

“우리, 잘 참고 살다가 수도원에 같이 묻히자.”

반복되는 일상에 지쳐 가끔 어깨가 내려앉을 때. 나는 둘만의 그 때 그 약속을 떠올리며 중얼대곤 했다. 서로 어깨를 두드리고 위로하며 그분을 위해 ‘충성’을 다하자고 말이다.

수도생활을 선택한 많은 이들이 주님께 충성을 맹세한다. 참으로 거룩한 맹세가 아닐 수 없다. 죽을 때까지 한분께 충성을 바치겠다는 순결한 다짐이기 때문이다.

물론 수도자라고 해서 항상 일관성있게 충성을 향해 나아가는 것만은 아니다. 교만이나 유혹 등에 빠져 우리의 주인을 잠시 배반하는 경우도 있으니 말이다. 물질적이고 육적인 것들 즉, 인간적인 것들은 우리 수도생활을 지속케 하는데 방해가 되는 또 하나의 ‘걸림돌’이다.

스미르나에는 교회유적이 거의 남아있지 않다. 다만 하느님께 충성을 맹세했던 스미르나의 폴리카르푸스 주교 순교기념성당만이 세워져 있을 뿐이다. 그는 155년경 체포돼 화형으로 순교했다.

‘충성심’을 가득히 머금은 채 폴리카르푸스 주교 순교기념성당으로 발을 옮긴다. ‘죽을 때까지 충성을 다하라’는 말씀이 새삼스레 가슴에 새겨졌다.

하느님의 무한한 은총으로 무장해 주님께 끝까지 충성을 다하는 군인이 될 것을 다시 한번 다짐한다.

“무엇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역경입니까? 박해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위험입니까? 칼입니까?”(로마 8, 35)

정말 무엇이 우리를 그분과 갈라놓을 수 있을까. 무엇을 두려워할까. 우리가 죽을 때까지 하느님께 충성을 약속하면 하느님은 우리가 죽을 때까지 가장 큰 ‘빽’이 돼주실 것인데 말이다. “하느님, 충성!”

-끝까지 하느님께 충성할 것을 다짐하며 김동주 도마 수사(성 바오로수도회)

◎오혜민 기자의 동행 tip / ‘충성’ 바친 스미르나 폴리카르푸스 주교

“구원자이신 그분을 어찌 배반하리오”

현재 터키의 이즈미르 지역을 성경상의 스미르나로 추측한다.

스미르나의 주교 폴리카르푸스는 예수의 직제자들과 교부들 사이의 연결고리 구실을 한 중요한 교부다. 그는 생애 말년에 로마 주교 아니체투스(155~166년경 재직)를 방문해 동서방 양 교회의 예수 부활 축일 문제를 논했다. 155년경 그는 로마에서 스미르나로 돌아와 곧 체포돼 화형으로 순교했다. 폴리카르푸스의 순교록이 전해와서 그의 감동적 최후를 상세히 알 수 있다. 이 순교록은 역사적 신빙성이 있는 스테파노의 순교이야기 다음으로 오래된 순교록이다.

순교 당시 총독은 주교에게 ‘그리스도를 저주하면 놓아 보내겠노라’고 하니, 주교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분을 섬긴 지가 86년이오. 그분이 제게 잘못하신 일이 단 한 가지도 없었소. 그러니 저를 구원하신 제 임금님을 어떻게 저주할 수 있겠소.” ‘죽을 때까지 충성을 바쳤던 성인’ 폴리카르푸스는 86세 나이로 순교했다. 축일은 2월 23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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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08-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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