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딱한 건 못 드세요? 고들빼기 장아찌는 부드러워요. 잡숴봐요."
3월 24일 서울 서초구 방배2동에 있는 `까리따스 사랑의 식당`. 빨간 앞치마를 두른 신성호(요셉, 80, 서초동본당)씨가 배식판에 반찬을 한 움큼 담아준다. 노숙인과 장애인들을 위한 점심식사 배식이다. 밖에는 이미 오전부터 노숙인 150여 명이 구름떼처럼 줄지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삶을 돌아보니 80 평생 남을 위해 한 일이 없더라고요. 가족을 위해서만 돈을 벌어 먹고 살았지…. 비록 겨자씨만 한 봉사지만 봉사하는 기쁨은 겨자씨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커요. 허허."
지물포를 운영하다 문을 닫고 노후를 보내고 있는 신씨는 2001년 가족과 이별의 아픔을 겪고 마음 둘 곳을 찾아 성당에 나가기 시작했다. 무료 급식소에서의 봉사는 올해로 8년째다.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성당까지 40분을 걸어가 새벽미사를 봉헌한 후 무료 급식소로 출근(?)하는 신씨는 도착하자마자 식판을 꺼내 놓는다. 여성 봉사자들이 반찬과 국을 조리하는 동안 신씨는 노숙인들이 마실 따뜻한 보리차를 준비하고, 채소를 다듬은 후에는 식당 청소를 한다.
"아무리 공짜밥이라고 해도 예수님을 대접하는 마음으로 봉사해요. 집에 돌아갈 때는 `보람있는 하루를 보냈구나`하는 흐뭇한 마음이 듭니다."
하지만 예수님 대하듯 대접한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다. 간질환자가 밥을 먹다가 쓰러지는가 하면, 술에 취한 노숙인이 와서 시끄럽게 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한겨울에 두꺼운 외투 하나 없이 겨울을 나는 노숙인들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신씨가 직접 준비해온 내복과 외투를 입혀 보낸 것이 여러 번이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9시 반부터 4시간 동안 매일같이 봉사해오다 지난해부터 일주일에 세 번으로 봉사 횟수를 줄인 신씨는 서울역 급식 봉사에도 나갈 생각을 했지만 아내의 만류로 보류시켰다.
"내 나이쯤 되면 퇴직하고 나서 허송세월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도 있고요. 비록 힘들지만 여기서 봉사하고 집에 돌아갈 때는 행복합니다."
신씨는 "길지 않은 남은 삶을 허비하는 건 안타깝다"며 어르신들에게 봉사활동에 참여해볼 것을 권했다.
이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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