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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부부 이야기] (27) 마누라에게 밥도 못 얻어먹는 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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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대신 제 목숨을 가져가시라고 기도했던 남편은 어디에…

   아내가 큰 수술을 한 후 절대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해서 한 달 넘게 집안일을 하지 못했습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다행히 아이들은 스스로 역할을 분담해서 집안일을 척척 나눠 했습니다. 직장인 둘째 딸은 집에 돌아오면 반찬을 만들고 다음 날 자기 도시락까지 잘 준비해 출근하곤 했습니다. 결혼해 만삭이 된 큰딸도 틈만 나면 친정에 와서 세탁기를 돌리거나 손이 잘 가지 않는 화장실 청소를 하곤 했습니다.

 막둥이 아들도 질세라 청소기를 돌리고 마른빨래를 정돈해 각자 방에다 갖다 놓곤 했습니다. 여기에 지인들이 반찬도 가져와 큰 도움을 줬습니다. 수술은 잘됐고 염려했던 후유증도 없어 행복했습니다.

 어느 날부터 아내는 다시 부엌일을 시작했습니다. 집안일이 한 가지씩 제자리를 찾을 무렵이었습니다. 식사 시간이 가까워지자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습니다. 침대에 누워있는 아내를 바라보니 아내는 모처럼 달콤한 단잠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하던 일을 멈추고 식탁에 우두커니 앉아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마누라에게 밥도 못 얻어먹는 남편이 됐구나`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세상에서 내가 제일 행복한 사람이라며 기뻐했는데 마음이 손바닥 뒤집듯 바뀐다는 생각이 들자 쓴웃음이 났습니다.

 무엇이 달라졌을까 생각해봤습니다. 그렇지만 아내를 깨울 수는 없었습니다. 살그머니 부엌으로 나왔습니다. 발걸음이 무거웠습니다.

 아내가 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있을 때 혹시 안 좋은 일이라도 생기면 어쩌나 싶어 안절부절못했고 평생 남편과 자식을 위해 고생만 해온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던 기억이 났습니다.

 아내 대신 제 목숨을 가져가시라고 간절히 기도했던 남편은 어느새 도망가고 없었습니다. 다만 밥을 차려주지 않는다며 스스로를 불행하게 바라보는 남편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자신을 들여다보며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아내 대신 집안일을 하면서 콧노래를 부를 만큼 기뻤는데 아내가 기운을 차릴수록 제 마음은 순식간에 달라지고 있었습니다.

 한 끼 식사에 목숨을 걸고 아침밥을 해주지 않는 아내와는 살 수 없다던 어느 형제가 생각났습니다. 자매는 "사람이 살면서 가끔은 빵 한 조각에 우유 한 잔으로 아침을 해결할 수 있지 어떻게 매일 밥을 하냐"며 "이렇게 투정하는 속 좁은 남자와는 살 수 없다"고 했습니다. 신혼부부였던 이들은 소리치고 싸우며 이혼을 하네 마네하며 상담을 청해왔습니다.

 이들 부부를 생각하며 벌떡 일어나 주섬주섬 밥상을 차렸습니다. 가스불에 올려놓은 따뜻한 국물을 들이키자 따스한 행복이 목으로 넘어왔습니다.

 이미 행복은 우리 집에 있었습니다. 팔자타령만으로도 모자라 스스로 불행하다고 여기는 어리석은 무리에 나를 가둬두었다는 것을 깨닫고 그곳에서 빨리 탈출했습니다. 내 손 안에 있던 행복을 한쪽 구석에 던져 놓고 스스로를 불행하다고 느꼈던 짧은 순간에서 벗어나니 기뻤습니다. 바라고 원하면 불행해지고, 베풀고 내어 놓으면 행복해지는 것을….


손세공 배금자 부부
(포콜라레 새가정운동 전 책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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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1-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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