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명한 피
플래너리 오코너 지음 / 허명수 옮김 / IVP / 1만 3000원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 남부의 한 도시. 전쟁 후 삶과 신앙을 잃어버린 헤이즐 모츠는 소설 속 가상도시 톨킨햄에서 설교자의 삶을 시작한다. ‘그리스도 없는 교회’를 세운다면서. 그러나 톨킨햄은 사기꾼과 매춘부, 방랑자 등 괴상한 인간무리로 가득한 죄악의 소굴과 같은 곳이다. 극단적 사회 부적응자, 가짜 목사와 거짓 선지자 등 다양한 무리가 사는 톨킨햄에서 모츠는 “진리가 없다는 것이 진리”라고 외친다. 그렇게 그는 사람들을 구원으로 이끌려고 하지만, 그럴수록 믿음은 멀어져가고 그의 고투는 좌절되고 만다.
책은 ‘헤밍웨이 이후 가장 독창적인 이야기꾼’으로 평가받았던 플래너리 오코너(1925~1964)가 1952년 발표한 장편소설로, 국내에 처음 번역 출간됐다. 독실한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나 개신교 근본주의가 맹위를 떨친 보수적인 미국 남부 지역에서 삶 대부분을 보낸 그는 종교적 비전과 믿음을 인류 전체를 향한 메시지로 승화시키기는 작품을 많이 남겼다. 스물다섯 살에 루프스병 진단을 받고도 이후 12년간 30여 편의 장ㆍ단편을 남긴 그는 특유의 기이하면서도 극단적 이야기 전개로 오헨리상과 미국예술문학아카데미상을 수상했다. 「현명한 피」 또한 인간 구원과 본성, 죄악에 진지한 물음을 던지는 그의 대표 소설이다.
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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