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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셀름 그륀 신부는 묵상과 기도는 내 마음을 주님께서 드나드는 ‘하느님의 자리’로 만들어야 한다면서 일상 속 피정을 강조한다. 그림은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마르타와 마리아의 집에 있는 그리스도’. |
눈을 감고 잠시 묵상에 들어가 보자. 대부분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는 데 시간이 걸릴 것이다. 또는 뜻대로 되지 않는 어떤 일이 계속 맴돌아 한동안 묵상의 갈피를 잡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런데 조금만 인내하고 숨을 가라앉히면 ‘침묵 속 고요’가 찾아온다. 그 때가 곧 ‘하느님과 만날 시간’이다.
시대의 영성가 안셀름 그륀 신부가 일상 속 ‘개인 피정’ 방법을 소개했다. 피정은 꼭 어디 찾아가서 할 필요가 없다. 일상 공간에서 충분히 나만의 묵상 시간을 마련하고, 하느님과 만날 수 있다는 게 그륀 신부의 설명. 그는 복잡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의식적으로 더욱 침묵 시간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한다.
한 시간 동안 묵상하기에 가장 좋은 때는 아침이다. 그러나 그게 어렵다면 정기적으로 침묵할 시간을 정해놓는 것이 좋다. 묵상 전 반드시 성경을 읽는 것을 권한다.
장소도 정해놓자. 집 한편에 ‘기도 공간’을 마련해도 좋고, 여의치 않다면 성당을 찾자. 그리고 나의 고요함에 응답하는 하느님과 대화하면 된다. 그렇다고 꼭 하느님을 만나야 한다는 강박 속에 묵상할 필요는 없다. 내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혹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면 된다.
그륀 신부는 현실에 강하게 사로잡힐 때 이마를 두 손으로 받친 채 바닥에 납작 엎드린다면서 자신만의 피정법도 공개한다. 사제가 될 때 하느님 앞에 엎드리듯이 그륀 신부는 부복(俯伏)을 통해 무능한 자신을 늘 하느님께 내맡겼다.
피정의 목적은 하느님이다. 각자가 가진 어려움과 일상 갈등을 해소하는 일보다 우선돼야 할 목적이 ‘참된 실재’이신 하느님을 느끼고 만나는 것이다.
“우리는 벙어리요, 귀머거리입니다.” 그륀 신부가 다소 강한 표현을 쓴 이유는 우리가 생각만큼 하느님께 잘 대화를 청하거나, 하느님 말씀을 잘 듣지 못하며 살기 때문이다. 처한 현실을 쉽게 포기하거나, 혹은 자기 일에 너무 열중한 나머지 우리는 하느님 앞에 진실을 드러내고 경청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그륀 신부는 평소 남에게 쏟아내는 유창한 말 뒤에 숨은 ‘진짜 나’를 하느님께 이야기하도록 ‘굳은 혀를 푸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고 일러준다.
예수님에게도 기도는 하느님과 홀로 만나는 시간이었다. 예수님은 아버지 하느님께서 마음속 골방에 들어오시도록 초대하셨고, 단둘이 만나 새로운 변화를 일으킬 힘을 얻으셨다. 4세기 저명한 수도승이었던 에바그리우스 폰티쿠스는 마음속 ‘하느님 자리’를 통해 우리 안에 있는 빛을 바라보고, 참된 자아를 만나며, 하느님께서 만드신 나의 순수한 형상을 바라볼 것을 강조했다. 고대 수도자들은 내면의 방을 ‘내가 건강해지는 장소’로 여겼다.
개인 피정을 통해 하느님과 자주 만나다 보면 어떤 변화가 생길까. 그륀 신부는 주님께서 마리아와 마르타의 집에 들르셨듯이 우리 각자의 집에도 늘 방문하신다는 ‘믿음’이 굳건해질 것이라고 설명한다. 마음 안에 ‘하느님을 가진 사람’이 되는 것이다.
나날이 쌓인 개인 피정의 목적지는 ‘하느님 사랑’ 체험이다. 그륀 신부도 “피정 중에 사람을 향한 하느님의 사랑과 나 자신을 향한 하느님의 사랑에 온전히 잠기기를 바란다”고 했다. 두 팔 벌린 예수님께 자주 안긴 나 자신은 어느새 하느님이 남긴 ‘사랑의 흔적’이 돼 있을 것이다.
이정훈 기자 sjunder@cpbc.co.kr
피정하고 싶다
안셀름 그륀 지음 / 김선태 주교 옮김
생활성서 / 1만 3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