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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향기] (89) 종이꽃

죽음 통해 삶을 깨닫는 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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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와 산 자를 위해 기도하고 죽음을 묵상하게 하는 위령 성월. 11월에 어울리는 영화 ‘종이꽃’은 장의사인 주인공 성길(안성기 역)이 종이꽃을 접으며 죽은 이들의 넋을 기리는 장례 문화를 다루고 있다.

동네 장의사를 운영하는 성길에게는 뺑소니 사고로 척추마비가 된 아들 지혁(김혜성 역)이 있다. 대형 상조회사로 인해 손님이 줄어들어 형편은 점점 어려워지는데, 걷지 못하는 아들에게 돈을 많이 써 경제 상황이 좋지 못하고, 그보다 더 큰 걱정은 아들 지혁의 계속된 자살 시도로 간병인 구하기가 쉽지 않다.

영화 도입부에 담배를 피우며 고민하는 성길의 뒷모습은 그의 무거운 마음을 대변하고, 성길 부자가 사는 허름한 연립주택과 건물 벽 페인트가 벗겨진 채 방치된 배경은 그들의 지친 모습과 닮아있다. 동네 어귀에 자리 잡은 ‘천국 장의사’ 간판은 요즘 보기 드문 풍경이 되었고, 가게 안에 보이는 수의, 관, 염습이라고 쓴 단어나 장례용품도 낯설다.

생소한 소재이지만, 성길이 죽은 이의 마지막 가는 길을 인간답게 보내주기 위해 예를 다하며 염하는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다. 예쁜 색깔의 종이로 종이꽃을 만드는 성길의 손놀림은 베테랑 장의사의 30년 관록이 그대로 묻어나 있는데, 성길을 연기한 배우 안성기씨의 품격 있는 연기로 진정성 있게 다가온다. “꽃이 귀한 시절 가난한 사람도 부자도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꽃을 대신해 종이꽃을 사용한 것과 같이 죽음은 누구에게나 똑같다”는 성길의 대사. ‘마지막 가는 길은 모두가 평등하고 존중받아야 한다’는 그의 생각이 우리에게 전해진다.

성길 부자는 앞집으로 이사 온 밝고 거리낌 없는 모녀를 만나 그동안 잊고 지내던 삶에 대한 희망을 품게 되는데 은숙(유진 역)의 긍정적인 성격과 노을(장재희 역)의 순수함이 극의 활력을 준다.

노을은 학교에서 자기 희망을 발표하며 “모든 이들은 죽습니다. 아픈 이들은 의사의 도움을 받고, 죽은 이들은 장의사의 도움을 받습니다. 그래서 저의 장래 희망은 장의사입니다”라고 해 어른들을 당황하게 한다. 성길이 어릴 적 의사가 되기를 강요했던 아버지처럼, 자신 역시 지혁이 의사 되기를 원하고 여행 작가가 꿈이었던 아들의 소망을 꺾으려 한 것과 맥락을 같이하면서, 자녀들의 행복은 부모들의 강요로 이뤄지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은숙이 “아름다운 것만 있는 게 세상은 아니다”라고 하듯 영화 속 등장인물들은 저마다 상처를 지닌 사람들이다. 노숙자나 가난한 이들을 위해 무료로 국수를 나눠주는 동백국수집 남자들은 국수를 먹으러 오는 이들이 불편해 할까 봐 티를 내지 않으려 애를 쓴다. 그들의 겉모습은 노숙자 이상으로 남루하지만, 인간적이고 따뜻한 마음을 느끼게 한다. 예상치 못한 위기가 닥쳐도 한 줄기 빛이 희망이 되어 현실을 극복하는 주인공들을 보며 잔잔한 감동과 여운이 남는다.

죽음을 이야기하며 생명과 인간의 가치를 존중하는 내용을 담은 영화 ‘종이꽃’은 제53회 휴스턴 국제 영화제에서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과 남우주연상을 받으며 국내외에서 주목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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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0-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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