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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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통해 인간이라는 궁극의 희망 건져 올리길”

르네상스서 현대까지 15인 화가작품 소개 다채로운 인문학적 통찰로 그림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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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을 사랑하지만 세상 것들은 사랑하지 않는 존재이고, 또 세상 안에서 살고 있지만 세상에 속해 있지 않죠. 신앙인으로서 우리가 가진 존재론적인 딜레마죠. 시대와 시대에 끼어서 갈등하는 개인도 교회도 종말론적 긴장을 갖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을 살아갈 몫이 있습니다. 그림을 매개로, 우리가 잃어버렸던 것들과 지켜야만 했던 것들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서유럽교회사를 전공한 역사학자 장동훈(인천교회사연구소장) 신부가 성화가 아닌 세속화를 해설한 「끝낼 수 없는 대화」(파람북)를 펴냈다. 제목이 된 ‘끝낼 수 없는 대화’는 빛과 어둠, 낙관과 절망, 기쁨과 슬픔 사이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 혹은 교회가 품어야 하는 명제이자, 우리가 대화를 포기하지 말아야 하는 당위와 비전을 담은 단어다. 작품과 관람객의 대화, 혹은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 교회와 세상과의 대화를 모두 함축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지금의 교회를 만든 공의회이기도 했고, 현대 교회의 얼굴이지만 공의회에서 이야기한 것은 우리가 진공 속에 있는 존재가 아니라, 시간 속에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교회 역시 세상 한가운데에 있기 때문에 세상에 일반적인 교훈과 훈계만 할 것이 아니라 고통에 귀 기울이기도 해야 하고, 사회적 현상을 비롯해 인류가 직면한 문제 등 소소하게 일상생활에서 고통을 동반하는 동반자로서 교회가 되어야 하는 것이지요.”

르네상스 시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15명 미술작가의 작품으로 대화를 걸어오는 그의 이야기를 따라가면, 그가 오랫동안 사유해온 ‘바깥’의 세상을 만나게 된다. 시대와 시대 사이에 끼인 작가들의 고뇌와 갈등, 거대한 자본시장의 바깥, 권력과 교회의 울타리 바깥, 시대의 그림자가 내려앉은 그늘지고 소외된 자리에 대한 시선을 통해 우리가 잃어버렸던 것들을 깨닫게 한다. 예술이론, 미술사, 종교사, 사회사를 넘나드는 그림 해설은 다채롭고 인문학적 통찰이 풍요롭다.

한결같이 ‘삶을 위한 예술’에 시선을 놓치지 않는 그가 선정한 작품들에는 인간이 존재한다. 미국 사실주의 대표 작가 에드워드 호퍼와 자크 루이 다비드와 프로파간다 미술을 통해 현대 문명과 오늘의 사회에 질문을 던지고, 북유럽의 자연과 소박한 농민들의 일상을 주요 소재로 삼은 피테르 브뤼헐, 네덜란드의 렘브란트 반 레인의 작품으로 ‘지금 여기’를 살아내야 하는 실존으로서의 인간을 조명했다. 그의 가슴을 뛰게 했던 한스 홀바인의 ‘무덤 속 그리스도의 시신’, 바로크 미술 작품들과 르네상스 미술의 선구자 조토의 작품 등을 통해 상품처럼 소비되고 있는 종교와 교회의 내일을 묻고, 시대와 이념, 신념과 체제 사이에서 피워낸 예술가들의 성취도 담아냈다.

2002년 이탈리아 로마 교황청립 우르바노대학교에서 교의신학 석사학위를 받고, 2009년 18세기 교황청 동아시아 정책을 주제로 로마 교황청립그레고리안 대학교에서 교회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때 그림을 업으로 삼고 싶을 만큼 그림에 관심이 많았지만, 사제 성소의 길을 택한 후 군 복무를 전후해 그는 닥치는 대로 돈을 벌었다. 도록 속 그림을 실제로 봐야겠다는 일념 하나로 짜장면 배달부터 일용직 노동, 보습학원 강사를 하며 유럽의 미술관을 찾아다녔다. 2002년 사제품을 받은 그는 인천교구 사회사목국과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에서 사목하며 노동자와 빈민들과 벗하며 살아왔다. 그래선지 그가 작품을 볼 때에도 우리 시대 노동자들과 연결지어 바라보는 시선을 낯설지 않다. 마사초의 작품 ‘낙원에서의 추방’을 2011년 부산 영도 조선소 크레인 위의 김진숙과 희망버스를 연결하고, 피테르 브뤼헐의 작품을 해설하면서 강남 구의역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세상을 떠난 비정규직 청년 노동자를 언급한다.

“어린시절 할아버지, 할머니, 고모들과 대가족으로 같이 살았는데,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새벽 미사에 갔다 오면서 늘 걸인을 집에 데려와 씻을 수 있게 해주고, 밥상을 차려주고, 옷을 입혀준 일이 너무 잦았습니다. 안방에서 자는 저를 깨워 안방에서 밥을 대접하는 아버지에게 화를 냈는데, 아버지가 ‘우리도 안방에서 먹잖아’라고 하신 그 한마디가 성소 동기가 되기도 했고요. 그 어떤 인문학 강의보다 훌륭한 가르침이었습니다.”

장 신부는 “작품을 보는 사람이 무엇을 길어올리느냐에 따라 다양하게 읽어낼 수 있다”며 “인간이라는 희망의 신뢰를 가졌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교회가 세상의 의미 없음과 외로움과 싸우는 현대인들에게 건네야 할 말은 단순히 언어가 아닌 언어 이상의 것, 즉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어야 합니다. 시꺼먼 방에 까만 고양이가 들어가, 남들은 방 안에 아무도 없다고 할 때 ‘고양이가 그 방에 있다’고 말하는 게 교회여야 합니다. ‘인간의 존재가 귀하다’, ‘인간의 존재가 형편없지 않다’고 이야기해야 하는 게 교회가 건네야 할 말이지요.”



이지혜 기자 bonappetit@cpbc.co.kr

끝낼 수 없는 대화

장동훈 신부 지음 / 파람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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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2-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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