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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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하고 진솔하게 풀어낸 마산교구장의 자기 참회록

서평 - 「늙은 아버지와 고독한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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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이렇게 되고야 말았습니다.”

2016년 제5대 마산교구장 착좌식에서 배기현 주교가 답사에서 처음 한 말이다.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지만 배 주교는 진지한 표정으로 하느님께서 자신이 불쌍해서 주교로 불러주셨음을 고백했다. 평소 재치와 유머로 듣는 이들에게 깊은 성찰을 하게 하는 배기현 주교가 「늙은 아버지와 고독한 아들」(생활성서)을 펴냈다. 교구장 주교의 자기 고백적 신앙 에세이로, 진솔한 자기 고백을 날카로운 신앙적 성찰을 통해 유쾌하고 담백하게 풀어냈다. 교구 주보 ‘가톨릭마산’에 실었던 에세이와 주교로서 발표한 사목교서와 담화문, 오늘의 자신이 있기까지 삶의 근간이 되어준 부모와 스승 신부에 대한 글을 담았다. 이연학(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회 미얀마 수도원 창설 책임) 신부가 보내온 서평을 싣는다.

허약함의 은사

읽으면 마치 사람의 얼굴을 마주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책이 있다. 목소리와 함께 숨소리마저 건너오는 듯한 느낌을 주는 책. ‘이야기 책’이 그렇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에 뛰어난 이야기꾼들을 주셨다. 그들의 목소리를 통하면 심오한 삶의 이치도 쉽고 재미있는 이야기로 거듭난다. 복음서는 그런 책의 전형이다. 어렵지도 복잡하지도 않은 그 ‘이야기’가 교회 신학의 토대요 원형이다. 혹자는 그게 바로 최고의 신학이라고 말한다.



늙은 아버지와 고독한 아들의 이야기

「늙은 아버지와 고독한 아들」도 따지자면 그런 계보의 ‘이야기 신학’이다. 주교님을 신학교 시절부터 알아 온 사람들은 그분이 희귀한 이야기꾼이었음을 먼저 기억한다. 광주신학교의 전설 콘스탄티누스 선배님. 독방은 ‘곤수암(坤守庵)’이라 했고, 암주(庵主)는 ‘파적(破寂)대사’라 불렸다. 그 방에서 더러 대침묵 시간에도 아픈 청춘들을 위한 ‘거룩한 집회’(사막 교부들은 이를 ‘쉬낙시스’라 불렀다)가 열리곤 했기 때문이다. 방에는 당연히 모종(?)의 향연(香煙)도 자욱해야 했다. 교수 신부님들도 명시적으로나 암묵적으로 허락해 주셨다. 성소의 위기를 겪는 학생들이 거기서 새로운 전기를 얻는 일이 드물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부분 스스로의 과거사를 소재로 펼치는 파적대사님의 이야기는 혼이 쏙 빠지도록 웃기고 재미있어 자주 포복절도(抱腹絶倒)했다. 그러나 웃음의 뒤끝엔 늘, 마음 깊은 곳에 꿈틀대는 ‘앙금’ 같은 게 남았다. 그건 더러 코끝 찡한 감동이기도 했고 슬며시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교훈(처럼 들리지 않는!)이기도 했다. 하느님 말씀도 때로는 훈계조의 직설(直說)보다 구수한 옛날이야기처럼 들려질 때 울림이 더 큰 게 아닐까 싶다. 때로 느낌표보다 의문부호가, 정치구호의 노골성보다 시의 망설이는 어조가 사람 마음에 더 깊은 반향을 불러일으키듯.



병고의 은사

이 책은 아픔과 치유에 관한 이야기다. ‘사목(司牧)’이란 말이 뜻하듯, 돌봄과 어루만짐에 관한 이야기다. 그런데 위로부터 하교(下敎)하는 듯한 근엄한 어조는 한 군데도 없다. 오히려 목자의 시선은 근원적으로 따스하다. 더러 비틀어 말하기는 해도 말투가 싸늘하지 않다. 신기하게도 이런 음성이 언제나 ‘회개’에 더 큰 효과를 낸다. 옷을 강제로 벗기려는 북풍보다, 스스로 옷을 벗게 하는 하느님 따스한 눈빛의 ‘햇볕정책’과 빼닮았다. 교구장 체면 따위 접어 두신 듯 본인의 허약함을 특유의 해학과 함께 아슬아슬한 필치로 고백하신다. 그럴 때마다, 방호복처럼 겹겹으로 감싸인 독자의 영혼 역시 무장을 해제당한다. 예컨대 신학생 시절뿐만 아니라 사제가 되어서도 성소의 위기를 겪으시던 때의 담담한 고백이 그렇다. 늙으신 아버지가 고독한 신부 아들의 금연 소식에 가슴 아파하시며 뱉으신 한 마디에(“다시 푸라!”) 면전에서 다시 담배를 피우며 부자가 함께 우셨다는 기가 막힌 이야기도 그렇다. 독자는 이런 장면들 앞에서 웃기도 하고 눈시울도 적신다. 그리고 저도 모르게 자기 약함과 어둠을 의식하고 그것과 화해하게 된다. 언뜻 화려하게도 보이지만 아픔과 그림자도 많았던 가정사, 평생 시달려 온 허리 병, 그리고 바오로 사도를 본받아 숨기기는커녕 우스갯거리로 펼쳐놓고 ‘자랑’하시는 다른 많은 약점들.(2코린 12,9 참조) 이 모든 것들이 한 인간과 가정의 구원사를 더없이 구수하게 풀어내면서 하느님 자비를 노래하는 재료로 쓰인다.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을 연상하지 않을 수 없다.

스스로의 허약함을 아는 사람. 하느님 자비의 품에서 그 허약함이 어떻게 소화되고 변모되었는지 겪은 사람. 그런 사람만이 타인의 아픔과 허약함과 상처를 이해하고 어루만질 수 있다. 어떤 할머니 수녀님께서 주교님을 두고 “병고의 은사를 지니신 분”이라 표현하신 적이 있다. 과연, 주교님은 허약함에도 불구하고 주교가 되신 것이 아니라 허약함 때문에 주교가 되셨다. 그 ‘허약함의 은사’가 이 작은 책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사순절의 영적 여정을 걷는 우리 모두를 위한 선물로.





이연학 신부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회

미얀마 수도원 창설 책임

늙은 아버지와 고독한 아들

배기현 주교 지음

생활성서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22-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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