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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송영수 작 ‘영광’, 1968, 포항시립미술관 제공 최의순 작 ‘019-2’, 2009, 김종영미술관 제공 최만린 작 ‘0 96-18’, 1996, 성북구립미술관 제공 최종태 작 ‘기도하는 여인’, 2022, 김종영미술관 제공 |
한국 조각계를 이끈 송영수(1930~1970), 최의순(1934~), 최만린(1935~2020), 최종태(1932~) 작가의 작품이 한자리에 모였다. 바로 특별기획전 ‘분화(分化)’가 열리고 있는 서울 종로구 평창동 김종영미술관이다.
1930년대생인 이들 작가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모두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서 한국 현대조각의 기틀을 다진 김종영(1915~1982) 작가의 지도로 조소를 전공했고,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이라는 격동의 시대를 겪으면서도 당시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조각가로서의 길을 굳건히 걸었다는 점이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박춘호 학예실장은 “학문에 학파가 있듯이 미술에는 화파가 있다”며 “네 분의 작업이 너무 다르지만, 각자의 예술관과 태도를 세심히 살펴보면 그 연원을 스승인 김종영 작가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1950~1954년 사이 각각 조소과에 입학해 당시 불혹 언저리던 김종영 작가에게 배우고 함께 작업했던 이들은 한국 조각의 정체성을 고민했던 스승의 뒤를 이어 동시대 서구 미술과는 거리를 둔 채 가장 한국적인 조각을 탐구했다. 그러나 뿌리는 같되 뻗어 나간 줄기는 서로 달랐다.
먼저 철조 조각의 선구자로 불리는 송영수 작가는 재료 자체가 흔치 않던 전쟁 직후 철과 스테인리스, 용접 등 새로운 재료와 기법을 과감히 수용하며 조각의 범위를 확대했다. 최의순 작가는 서구 조각의 흐름을 온전히 살피기 위해 학문적으로 깊게 파고들었으며, 이를 토대로 주로 석고를 이용해 구상과 추상을 넘나들었다.
최만린 작가는 서구 인체 조각의 그늘에서 벗어나 동양 미학에 뿌리를 둔 작업을 모색했다. 마지막으로 최종태 작가는 혼돈 속에서도 삶을 지속해야 하는 인간의 숙명과 존재를 성찰하며 오로지 사람, 특히 여성 조각에 집중했다. 명백한 ‘분화(分化)’가 이뤄진 셈이다.
전시는 그 ‘분화’를 뚜렷하게 드러내기 위해 각 작가의 말년 작품을 중심으로 조각과 드로잉 등 총 50여 점을 선보이고 있다.
박 학예실장은 “네 분의 작가는 스승 김종영에 머물지 않고 자기 길을 찾아 나섰다”며 “그들이 어떻게 한국 조각사의 한 페이지를 썼는지, 그 ‘분화’가 지금의 미술계에 미친 영향을 살필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한편, 이들 작가에게는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 각자 세례를 받은 시기는 다르지만 스승 김종영(프란치스코) 작가를 비롯해 모두 가톨릭 신자라는 점이다. 송영수(미카엘), 최의순(요한 비안네), 최만린(알베르토), 최종태(요셉) 작가의 공통된 예술관과 삶을 대하는 태도에서 종교적인 연원을 찾아보는 것도 관람 포인트가 될 수 있겠다.
‘분화’전은 서울 평창동 김종영미술관 신관 1~3전시실에서 3월 26일까지 이어진다. 휴관일인 월요일을 제외하고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문의 02-3217-6484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