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세 오르는게 걱정돼 여름에 에어컨을 마음껏 틀고 사는 건 엄두도 못냅니다.”
서울 돈의동 쪽방촌에 사는 박경화(61)씨는 20여만 원의 월세 대신 무더위를 택할 수밖에 없었다. 합판으로 지어진 지붕과 벽은 열기를 차단하지 못했고, 3.3㎡(1평) 남짓한 공간에 에어컨을 둘 여유가 없었다. 복지 차원으로 지자체에서 각 집 공동복도에 에어컨을 설치해줬지만 전기사용이 월세 상승으로 이어질 것을 우려해 에어컨을 사용할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는게 박씨의 설명이다.
돈이 없어 더위와 추위를 피하지 못한 채 위험에 노출된 에너지 빈곤층에게 점점 더 뜨거워지는 지구는 생명을 위협하는 살인 무기나 마찬가지였다.
■ 선풍기와 부채로 여름을 나고 있는 에너지 빈곤층
‘연료 빈곤층’이라고도 불리는 에너지 빈곤층은 적정한 수준의 에너지 소비를 감당할 경제적 수준이 안 되는 가구를 말한다. 1970년대에 영국에서 처음 등장한 개념으로, 겨울철 거실온도 21℃, 거실 이외의 온도 18℃를 유지하기 위해 지출하는 에너지 구매 비용이 소득의 10를 넘는 가구를 에너지 빈곤층이라 규정한다. 돈이 없어 폭염이나 한파가 닥칠 때 냉·난방 시설을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라는 얘기다. 에너지경제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2015년 기준으로 전체 가구의 8에 달하는 130만 가구가 이런 상황에 놓여 있다.
환경의 훼손은 가장 취약한 이들에게 더욱 가혹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2020년 에너지시민연대가 에너지 취약가구 298가구를 대상으로 여름철 에너지 빈곤층 실태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가구 유형은 노인세대가 252가구(85)로 가장 높았으며, 평균 연령은 75.3세로 조사됐다.
응답자 중 229가구(77)는 경제활동을 하고 있지 않았으며, 응답자의 월 평균 가구소득은 31만 원에서 60만 원이 59(175가구)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응답자는 평균적으로 약 44.3㎡(13.4평) 정도의 공간에서 생활하며 거주 주택 38가 1970년대 이전에 건축된 것으로 조사됐다. 2020년 기준으로 건축연도가 20년 이하인 주택은 단 8에 불과했다. 응답자의 62가 30년 이상 된 노후 주택에서 거주, 추위와 더위를 피하기 어려운 환경에서 지내야 했다.
이용하는 냉방시설은, 선풍기 이용자가 262가구(88)로 대다수였고, 5가구는 부채로만 생활한다고 답했다. 폭염으로 인해 어지러움, 두통 등 건강 이상을 경험한 가구는 75가구로 조사됐다.
■ 정의와 환경 문제 함께 생각해야
전기료가 오르면서 곧 다가올 여름을 보내야 하는 에너지 빈곤층들에게 위기가 닥쳤다. 이에 정부는 에너지 복지정책인 에너지 바우처의 단가 인상과 대상 확대 방안을 마련했지만 미봉책에 머문다는 지적이 나온다.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박진희 이사장은 “정부는 해당 지원 대책 발표 후로는, 당분간 계속될 것 같은 국제 에너지 가격 인상을 비롯한 에너지 위기에 대한 장기 대안을 밝힌 바가 없다”며 “혹한과 혹서 빈도가 갈수록 잦아지면서 에너지 취약계층이 증가할 상황 등을 고려한 에너지 복지 대상 정비도 필요하지만 아직 이 논의는 시작조차 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특히 난방부문 복지로 지원되는 주요한 에너지가 연탄, 등유 등 화석연료에 집중된 점은 탄소중립 사회로 가는데 걸림돌이 되는 요소다.
박진희 이사장은 “정부는 난방부문 에너지 복지를 위해 연탄, 등유 등의 화석연료를 에너지요금 할인과 연료비 지원을 통해 전개해왔다”며 “바우처 사업의 경우, 탄소중립 정책과 충돌이 일어나도록 설계된 복지 정책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가 없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바우처 사업 보다는 보일러 설비 교체, 주택 단열 사업 등을 포함하는 에너지효율 개선사업의 규모와 대상을 확대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구의 위기는 모두에게 책임이 있지만, 그 영향은 불평등하게 돌아갔다. 돈이 없는 사람에게는 기후위기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에너지를 이용할 수 있는 순서가 돌아오지 않았다. 생태론적 접근은 언제나 사회적 접근이 돼야 한다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을 되새겨야 하는 이유다. “정의의 문제를 환경에 관한 논의에 결부시켜 지구의 부르짖음과 가난한 이들의 부르짖음 모두에 귀를 기울이게 해야 합니다”(「찬미받으소서」 49항)
민경화 기자 mk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