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휴가철이다. 피서지에서, 또는 편안한 집에서 음악과 그림, 누군가의 삶을 담아낸 소설과 에세이로 몸과 마음을 재충전하면 어떨까.
힘들 때 이런 음악 어때요? / 안셀름 그륀 신부 / 이장규 신부 옮김 / 분도출판사
피타고라스는 음악이 사람 안에 있는 다양한 현(絃)을 함께 조화롭게 울리게 해주기 때문에, 사람을 치유한다고 확신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음악의 정화 효과와 치유 효과를 말한다. 요한 크리소스토무스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시편을 주셨고, 이 시편을 노래로 낭송할 수 있다는 것을 하느님의 은총으로 여겼다.
시대가 달라지고 수많은 장르가 생겨났지만, 사람은 누구나 자의든 타의든 한평생 음악과 함께한다. 기쁠 때, 슬플 때, 외로울 때, 지칠 때 여러분은 어떤 음악을 듣는지?
철학과 신학을 분석심리학에 접목한 강연과 상담으로 대중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안셀름 그륀(성 베네딕토 수도회) 신부가 이번에는 ‘음악’을 얘기한다. 최근 출간된 「힘들 때 이런 음악 어때요?」에 지금껏 늘 함께해온 다채로운 음악을 담았다. 실제로 학교에서 첼로를 배워 오케스트라 활동을 했고, 수도 생활에서 매일 그레고리오 성가를 부르는 저자는 음악은 좋은 기분을 더 좋게 해주고, 슬픔을 다독여주며, 지친 마음을 어루만져준다고 말한다. 음악에 우리의 감정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바흐의 음악은 영혼을 깨끗하게 해주고 치유해주며, 슈베르트의 음악은 나의 마음을 공감해주고 그 마음이 진짜로 갈망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준다고 말한다. 이밖에 걱정, 죄의식, 기쁨, 저항, 상실, 아름다움, 내적 공허 등 다양한 감정을 느낄 때 그 마음에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음악들을 소개한다. 또 전례 주년에 따른 자신만의 음악 예식도 귀띔해 준다.
“대림 제1주일에 바흐 칸타타 ‘이제 오소서, 이방인의 구세주여’를 듣고, (중략) 헨델 ‘메시아’의 대림 시기에 해당하는 부분을 듣는 것은 저한테 정해진 예식이나 다름없습니다. 바흐의 칸타타뿐 아니라 모차르트의 ‘미사곡’들, 헨델의 ‘메시아’는 일 년 내내 저와 함께합니다.”(11쪽)
나의 창을 두드리는 그림 / 장요세파 수녀 / 파람북
그림을 소개하고 설명하는 책은 많다. 그런데 저자가 봉쇄수도원 수도자라면?
“또 하나 저의 창을 두드리는 것이 있으니 바로 그림들입니다. (중략) 그림 자체는 물론이거니와 화가의 생애나 삶 또한 제 창을 두드리는 손가락들이지요. 화가의 삶치고 평탄한 삶은 거의 없습니다. 무거운 짐을 지고 그 삶의 계곡 깊은 곳에서 건져 올린 번득이는 통찰들을 그림으로 나의 창을 두드립니다. 그들이 품었던 그 깊은 울림, 사람들에게 나누고 싶었던 아름다움, 두려움, 평화, 혼돈 등으로 우리의 창을 두드립니다.”(7쪽)
일본 홋카이도의 트라피스트 여자수도원에 입회한 뒤 지금은 창원 수정의 성모 트라피스트 봉쇄수녀원에 머물고 있는 장요세파 수녀가 「나의 창을 두드리는 그림 수도원에서 띄우는 빛과 영성의 그림 이야기」를 펴냈다.
저자에게 그림은 세상을 바라보는 창이다. 인류의 문화적인 정보가 한 장으로 압축된 것이 그림이기 때문이다. 모든 뛰어난 작품에는 한 시대의 모습뿐만 아니라, 시대를 관통해도 변함없는 우리 삶의 진실이 담겨 있다. 다양한 성화부터 렘브란트, 마티스, 모네, 반 고흐, 반 에이크 등 유명 서양화가는 물론 한국 작가들의 작품도 저자가 읽어내는 색다른 시선으로 감상할 수 있다.
차쿠의 아침 마지막 이야기 / 이태종 신부 / 바오로딸
한국의 두 번째 사제 최양업 신부의 삶을 다룬 「차쿠의 아침 마지막 이야기」가 출간됐다. 최양업 신부는 귀국 후 12년간 한강 이남 127개 공소를 돌아다니며 사목했고, 책은 그 가운데 간월공소에서 추격자들에게 포위된 순간부터 선종할 때까지 마지막 9개월에 대한 이야기다.
소설에 등장하는 최양업 신부는 그 시대의 어려움과 고난 중에 인생의 참 의미를 깨닫고, 지침 없이 참 행복의 길, 희망의 길로 나아간다. 그가 설파한 참된 행복과 희망은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신앙의 좌표가 되고 희망의 별이 된다. 아울러 최양업 신부의 신앙과 순명 정신, 사목적인 고민들과 안타까움, 그리고 박해 시기를 견뎌내는 신자들에 대한 애타는 사랑과 열정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나는 순교하고 싶어도 순교할 수 없는 몸이었다. 유일한 조선인 사제라는 이유다. 조선교회에 봉헌된 자로서만 만족해야 했다. 봉헌된 자는 봉헌 받은 분의 뜻대로 사용되면 족할 뿐이다. 나를 기다리는 120여 개 공소의 신자들 앞에서 언감생심, 얻고 싶어도 얻을 수 없는 월계관이었다. 그러나 언젠가는 조선 땅에도 박해가 끝나고 순교도 사라질 것이다. 그런 날이 오면 매일매일을 치명하듯 사는 일상이 쌓여, 마침내 도달하는 선종이야말로 순교의 월계관에 비견할 만하리라.”(219쪽)
저자 이태종 신부(청주교구)는 최양업 신부의 첫 사목지이며 병인박해 직후 조선교구청과 조선신학교가 있었던 차쿠에서 사목하고 있다.
신을 구한 라이프보트 / 미치 앨봄 / 장성주 옮김 / 윌북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천국에서 만난 다섯 사람」 등을 집필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 미치 앨봄의 신작 「신을 구한 라이프보트」가 출간됐다.
침몰하는 호화 요트에서 간신히 라이프보트에 올라탄 열 명의 사람. 그들은 표류 나흘째 한 남자를 바다에서 건지는데, 물에 빠진 생쥐 꼴을 하고서 허겁지겁 음식과 물을 받아먹던 그는 자신이 ‘신’이라고 주장한다. 상처 하나 없이 매끈한 몸으로 구조된 데다 그를 중심으로 자꾸만 신비한 일들이 벌어지기에 어떤 판단도 쉽게 내릴 수 없는 상황이다.
드넓은 바다 위 작은 구명보트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는 인간 내면의 따뜻하고 아름다운 면모와 욕망이 들끓는 추악한 모습을 한데 뒤섞어 놓았다. 호화 요트는 왜 침몰했고, 자신이 신이라고 주장하는 남자의 정체는 무엇일까? 모든 비밀이 풀릴 때 독자들은 해일처럼 밀려오는 쾌감과 감동을 느낄 것이다.
니는 혼자가 아이다 / 심재훈, 김미조 / 가디언
“아무리 생각해도 신이 우리만 잘 묵고 잘 살라고 내 같은 놈을 의사로 만든 것 같지가 않다. 내는 나중에, 더 나이가 들면 의료봉사를 할 생각이었는데, 이런 생각이 무슨 소용이고. 지금 하지 못하는 일을 나중에는 하겠나. 또 나중에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지금 몬 할 이유가 머겠노.”(211쪽)
88세, 미국에서 의사로 성공적인 삶을 산 심재훈 박사의 인생 드라마가 한 권의 책에 담겼다. 그런데 제목이 예사롭지 않다. 「니는 혼자가 아이다」. 해피엔딩 인생을 예고하는 그의 어린 시절은 지독히 외로웠기 때문이다. 엄마 배 속에 있을 때 부모가 이혼하는 바람에 전국의 친인척 집을 떠돌아야 했고, 삶의 조각을 모조리 이어붙여도 부모와 함께한 시간은 3년이 채 되지 않는다. 그런 그를 나락에서 끌어올린 것은 신이었고, 광야에 홀로 버려진 것 같았던 그를 의사로서 중심을 잡고 살아갈 수 있게 한 것도 종교의 힘이었다.
영등포 쪽방촌 노숙자들의 희망 ‘요셉의원’에서 73세이던 2003년부터 2015년까지 매년 3개월간 봉사했다. 매번 미국 플로리다에서 오가는 긴 여정이었다. 의대 신입생 시절 마음먹은 의료봉사를 칠순을 넘긴 나이에 실행했지만, 자신이 일어섰던 절실한 마음으로 환자를 살폈다.
“이렇게 힘들게 사는 사람들 속내를 알아요. 제가 그렇게 살았거든요. 남의 일이라 생각하지 않으니 어려울 것도 없는 거죠.”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