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갈아 찾아오는 폭우와 폭염으로 유난히 힘든 여름이다. 지친 몸과 마음을 책 속에 담긴 소박하지만 의미 있는 가치들로 충전해보면 어떨까.
하느님께 마음을 모아-기도 안에서의 식별 / 윌리엄 A. 배리 신부 지음 / 권영목 신부 옮김 / 이냐시오영성연구소
「하느님께 마음을 모아 기도 안에서의 식별」은 윌리엄 A. 배리(예수회) 신부의 역작으로, 삶의 고단함이나 현대사회의 복잡함 등으로 하느님과의 만남에 집중하기 어려운 신자들을 돕기 위해 집필되었다.
“관계는 서로 자신을 드러냄으로써 발전한다. 그러나 내가 상대방을 신뢰해야 자신을 드러낼 수 있다. 즉, 드러내 보인 그대로를 상대방이 받아들일 거라고 믿을 때 자신을 드러내게 된다. 우리가 서로 친밀해지는 바탕은 상대방이 나를 알기를 원하고 나에게 호감을 갖고 있다는 신뢰이다. 당연히, 하느님과 친밀해지는 바탕도 그러한 신뢰다.”(14쪽)
“만일 내가 하느님과 더욱 친밀해지기를 바란다면 하느님께 내가 어떻게 느끼고 무엇을 진정 바라는지 말씀드리는 것이 필요하다. 이렇게 하는 것은 그분께서 나를 더욱 많이 아시게 하기 위해서라기보다 내가 그분께 더욱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서이다.”(22쪽)
책은 하느님과 직접 관계 맺는 방법, 그 관계가 친밀해지는 데에 방해가 되는 요소들을 제시해 신자들이 신앙생활에서 실제로 하느님을 체험하고 복음의 기쁨을 영위하도록 돕는다.
광암 이벽 / 황보윤 지음 / 바오로딸
「광암 이벽」은 한국 천주교의 선구자 이벽(요한 세례자, 1754~1786)의 생애를 담은 소설이다.
조선 후기 사회적인 모순이 누적되면서 주자학에 심한 반발을 느낀 학자들이 서학을 연구했다. 그들은 서학의 과학기술을 유용한 학문으로 받아들인 반면 종교만은 이단시하였다. 서학을 학문뿐만 아니라 종교로 받아들인 이들이 이벽, 이승훈, 정약전·약종 형제, 권철신·일신 형제 등이다. 그중에서도 조선 천주교 창설에 선구자적 역할을 한 사람이 이벽이다. 그는 1777년 이래 주어사, 천진암에서 있었던 수사학(洙泗學)적 분위기의 강학을 그리스도교 진리 탐구와 실천적인 분위기로 바꿨고, 이승훈에게 천주교를 소개하여 중국에 가서 영세를 받게 함으로써 1784년 많은 조선인 신자 공동체를 이루게 하였다. 한국 천주교는 그 해를 천주교 창설의 원년으로 삼아 기념하고 있다.
책은 유교의 나라 조선에 자발적으로 천주교 신앙이 태동하게 된 배경과 수용 과정, 당시 조선의 사회상 등을 역사적 사실에 기반을 두고 재구성했다. 이벽의 성품과 학문 세계, 세례를 받고 천주교 신앙의 길을 닦아가는 과정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또 이벽과 정약용의 관계가 우정과 학문, 종교를 중심으로 사실과 허구를 오가며 흥미롭게 전개된다.
찬란한 존재들 / 브라이언 도일 지음 / 김효정 옮김 / 가톨릭출판사
“황혼녘에 우리의 자전거와 서핑 보드를 차고로 운반하던 키가 크고 호리호리한 형이 가장 기억에 선명하다. 우리가 가장 또렷이 기억하는 것들, 우리의 기억에 가장 의미 있게 남아 있는 것들은 세상의 척도로 볼 때 아주 사소한 것들이다. 하지만 그것들은 절대 하찮지 않다. 그것들은 너무 거대하고 소중하고 거룩해서 우리에게는 아직 그것들을 담을 만큼 큰 단어가 없다. 그래서 그 근처에라도 가려면 암시나 비유의 힘을 빌려야 한다.”(181쪽)
브라이언 도일의 「찬란한 존재들」은 평범하고 소소한 일상이 무엇보다 아름답고 소중함을 일깨우는 에세이다. 우리나라에는 처음 소개되는 작가지만, 저자는 소설가이자 시인, 수필가로 20권 이상의 책을 발표했고, 미국 예술문학 아카데미 문학상 및 가톨릭 도서상 등을 수상했다.
이 책은 저자가 여러 매체에 소개했던 글을 다듬어 엮은 것이다. 일상에서 만나는 친절과 기쁨, 사랑과 은총을 주의 깊게 들여다보고, 신앙과 가족, 삶의 의미 등 이 시대에 꼭 돌아봐야 할 순간들을 경쾌하고 재치있는 문장으로 풀어냈다. 특히 아일랜드계 가톨릭 가정에서 자라 믿음이 삶의 단단한 기준인 저자가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본 일상의 많은 순간은 따뜻하고 사랑스럽다.
희망의 책: 희망의 사도가 전하는 끝나지 않는 메시지 / 제인 구달·더글러스 에이브럼스·게일 허드슨 지음 / 변용란 옮김 / 사이언스북스
「희망의 책」은 동물과 인간, 환경의 권리를 위해 전 세계에서 활약해 온 제인 구달(1934~) 박사의 최신 인터뷰집이다. 공저자이자 기획자인 더글러스 에이브럼스가 2019년 8월과 12월, 2020년 가을 온ㆍ오프라인에서 만난 제인과의 대화를 중심으로 ‘희망’에 대해 얘기한다. 책은 크게 3부로 구성된다. 1부 ‘희망이란 무엇인가’에서는 희망의 진정한 의미와 그 희망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을 탐구하고, 2부 ‘희망에 대한 제인의 네 가지 이유’에서는 희망의 네 가지 주요 근거에 초점을 맞춘다. 인간의 놀라운 지능, 자연의 회복 탄력성, 젊음의 힘, 굴하지 않는 인간의 정신력이 그것이다. 3부 ‘희망은 끊임없이 갱신된다’에서는 제인의 여정이 시작된 시절부터 다음 모험에 대한 기대와 희망으로 마무리된다.
영국 출신의 제인 구달은 세계적인 동물학자이다. 어릴 때부터 아프리카 밀림을 동경해 23살이던 1957년 케냐에 갔고, 1960년부터는 탄자니아 곰베 지역 침팬지 연구에 합류했다. 이와 관련해 1965년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동물행동학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1977년에는 ‘제인 구달 연구소’를 설립해 침팬지 및 다른 야생 동물들이 처한 실태를 알리고 서식지 보호와 처우 개선을 장려하기 시작했다. 또 전 세계 어린이와 아프리카 지역 거주민들과 함께 지구를 보호할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저명한 상들을 수상했고, 2002년에는 UN ‘평화의 메신저’로 임명되었다.
나를 기쁘게 하는 색깔 / 정은귀 지음 / 마음산책
「나를 기쁘게 하는 색깔」은 영문학자 정은귀(한국외대, 스테파니아) 교수의 신작 산문집이다. 시를 읽고 가르치고 번역하는 그녀는 국내외 시인들의 작품을 두루 살펴 23편의 시와 3편의 산문을 고르고 묶었다. 여기에 그녀만의 글과 깊은 영성으로 자신은 물론 타인과 사회의 안녕을 희망한다.
“타인을 위하여 온전히 내 마음을 내어주는 기도가 있기에 이 세계는 그나마 그처럼 무도한 혼란과 좌절과 절망 속에서도 하루하루 나아가고 있는 것 아닐까 싶어요.”(146쪽)
“재난이 지나는 자리에는 배타적인 혐오와 죽음, 공포만이 있지는 않습니다. 재난과 마주하면서 우리는 지금까지 우리가 그토록 맹목적으로 매달려온 부와 성장, 문명의 신기루가 삶의 본질이 ‘아님’을 분명히 알게 됩니다. 재난의 전선에서 싸우는 분들을 통해 우리는 이 재난이 묶어주는 큰 사랑과 희생, 나눔과 연대의 가능성도 봅니다. 이런 것들이 삶의 본질적인 것들입니다.”(171쪽)
‘나를 기쁘게 하는 색깔’이라는 제목은 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스의 시 ‘목가’에서 따온 것이다. 무슨 뜻을 내포하고 있을까? 우리에게 익숙한, 또는 생소한 시와 그 시에 담긴 뜻, 저자의 생각이 어우러져 ‘시’를 품은 책장이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넘겨진다.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