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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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간 머리 맞대고 1400쪽 번역… “혼자라면 못 했을 은혜로운 시간”

그릴마이어 추기경의 「교부들의 그리스도론」 공동 번역가들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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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안소근 수녀, 허규 신부, 김형수 신부, 최대환 신부가 공동 번역 과정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그릴마이어(Alois Grillmeier, 1910~1998) 추기경의 「교회 신앙 안의 예수 그리스도」(1990) 1권이 한국어로 번역·출간되었다.

「교부들의 그리스도론」이란 제목으로 사도 시대에서 칼케돈 공의회까지의 그리스도론을 다룬 이 책은 초판 이후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현대 신학계에서 규범적이며 모범적인 연구로 평가받는다. 그도 그럴 것이, 초대 교회의 그리스도교 공동체로 출발해 교회가 복음을 선포하는 과정에서 마주했던 다양한 상황과 방대한 만남, 그 안에서 나오는 다채로운 연구 주제들을 상세히 서술하고 있다. 복음서가 선포하는 예수 그리스도, 그 바탕을 이루는 유다교 구약 성경의 신앙 전통, 당대 헬레니즘 세계와 그리스도교의 조우, 스토아 철학과 중기 내지 후기 플라톤주의 등 그 시대 철학과 영향은 물론이고, 선포된 신앙을 견지했던 정통 교부들, 여러 이단과 수많은 학파, 니케아, 콘스탄티노폴리스, 에페소, 칼케돈 공의회에서 이뤄진 주요 신앙 정식의 선포 등 그리스도론의 거대한 흐름을 조망하고 있다. 덕분에 책은 총 1400쪽에 달한다.

그렇다면 시대와 역사는 물론이고 주요 학문을 총망라한 이 책을 과연 누가 번역했을까?


최대환 신부(이하 최 신부) : 2007년에 술 마시면서 우리끼리 ‘이 책은 누가 번역할까?’ 하다가 시작된 거죠.

김형수 신부(이하 김 신부) : 아니, 식사하면서.

허규 신부(이하 허 신부) : 맨정신에는 못 했지.(웃음)



역시 혼자서는 불가능한 작업이었나 보다. 오랜 기간 연구와 저술 활동을 펼쳐온 5명이 무려 3년 동안 번역에 매달렸다. 바로 김형수(부산교구) 신부, 신정훈(서울대교구) 신부, 안소근 수녀(성도미니코선교수녀회), 최대환(의정부교구) 신부, 허규(서울대교구) 신부다.

2000년대 초반 우연히 독일 뮌헨에서 같이 공부했던 네 신부가 함께한 자리에서 꺼낸 ‘번역’ 얘기가 김 신부가 서울에 오고, 수많은 번역 작업을 해온 안 수녀가 영입되면서 2019년 본격화된 것이다. 3년 동안 1000쪽이 넘는 책을 번역하자면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을까. 아니, 하고 싶은 말이 얼마나 많겠나. 현재 독일에 있는 신 신부를 제외한 네 명을 서울 혜화동 가톨릭대 성신교정에서 만났다.



- 「교부들의 그리스도론」 그렇게 대단한 책인가?

최 신부 : 가톨릭 교의신학에서 교부들의 그리스도론을 연구하는 데 있어 전환점이 된 책이라 할 수 있죠. 철학을 원용해 그리스도에 관한 교의를 형성하는 과정이 타당했느냐는 논쟁이 있었는데, 교부들이 오랜 기간 토론과 격론을 통해 비판적으로 수용했다는 걸 잘 보여주거든요. 이에 대한 강의록은 1940년대부터 있었고, 독일어로 1980년대까지 증보판으로 나왔어요. 5명이 번역하기도 힘든데, 이 분은 그 시대에 혼자서 타자기로 쳤다는 게 더 놀랍죠.

안 수녀 : 주요 서적의 각주에 계속 나오는 책이에요. 이번에 번역하면서 느낀 점은 저자가 그리스도 철학을 받아들인 사람들의 입장을 이해해줬다는 거예요. 대표적으로 우리는 ‘네스토리우스 같은 경우 이단이고 키릴루스는 정통이니까 키릴루스 말만 맞다’고 생각하는데, 저자는 네스토리우스가 어떤 배경에서 이런 말을 했고, 처음에는 잘못이 아니었을 수 있다는 점 등을 많이 참작해준 것 같더라고요. 이단으로 결정되는 것은 나중의 문제이고, 그전까지는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최 신부 : 1960~1970년대 독일 신학생들은 모두 봤던 책이에요. 오늘날 학생들에게는 더 요령 있게 정리된 책이 많지만, 그 교재가 나올 수 있었던 교과서라고 할까요. 또 저자가 독일 분이라 교회 일치에 관심이 많았는데, 신 신부가 공을 들인 해제에도 밝혔듯이, 교회 분열이 교의의 분열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은 정치적 이유가 많거든요. 신학의 원류로 가면 화해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교부를 중심으로 한 그리스도론을 충분히 이해하면 서로 포용할 수 있는 폭도 넓어지겠죠.



- 공동 번역, 의견 충돌은 없었을까?

김 신부 : 의견 충돌이라기보다는 ‘용어 선택’에 시간이 걸렸어요.

최 신부 : 교의신학자, 성서학자, 철학자가 민감한 부분이 따로 있거든요. 그런 부분은 배운다는 생각으로, 또 너무 고집하지 않는 자세는 되어 있었던 것 같아요.

안 수녀 : 누군가와 같이 번역하려면 자기 고집을 어느 정도는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해요. 아니면 그중 한 명이 절대적 권위를 갖고 있거나. 우리는 신 신부님이 그 역할을 했는데, 각자 분야가 다르다 보니 전문 분야에서는 그 사람이 하는 말을 받아들인 편이에요.

최 신부 : 저희도 꽤 오랫동안 공부했다고 생각하는데, 내용도 어렵고 생전 보지 못한 책과 사람이 너무나 많아서 놀랐어요. 일단 예전에 나온 책이라 PDF 파일로 돼 있지 않아서 제가 가진 원본을 희생시켰어요. 일은 먼저 나눠서 초안을 쓰고, 언어적으로 수녀님이 한 번 다듬으시고, 그걸 최종적으로 신 신부에게 보냈어요. 아무래도 교의신학자니까. 저희끼리 모여서 윤독하면서 다시 보고. 그때 용어나 내용을 두고도 토론을 많이 했죠.

허 신부 : 가장 걱정되는 사람은 편집자였어요. 원고 다 넘기고 나서 우리끼리 ‘편집자는 어떻게 하지?’ 얘기했거든요.(웃음)



- 지금의 관점에서 논란이 될 수 있는 부분은 없을까?

최 신부 : 신 신부님 해석에 따르면 (그리스도론 발전 과정 및 교회 정치 차원에서 서로 다른 중점을 가지고 막대한 영향을 끼친) 알렉산드리아 학파와 안티오키아 학파 중 저자는 알렉산드리아 학파에 좀더 공감하는 면이 있다고 하셨어요. 지금의 관점에서는 좀 경도된 면이 있죠.

허 신부 : 일단 옛날 책이라 기술 방식이 좀 달라요. 객관적인 내용만 쓰기보다는 저자의 생각이 들어가죠. ‘내가 보기에···’ 이런 식으로. 전체적으로 보면 이쪽을 좀 두둔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 그것도 이 책의 장점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최 신부 : 그 시대 신학자들이 지닌 자신감이 있어요. 통찰이 상당히 많은데, 요즘은 그런 식으로 글을 쓰지 않잖아요. 다들 문헌에 의존하니까. 그리고 무척 복잡하게 얘기하고 나서 ‘진리는 단순한 것이다, 다 소용없다’ 이런 식으로 마무리된 면이 있어서 다들 웃기도 했어요.

김 신부 : 토마스 아퀴나스가 나중에 절필한 것처럼.(웃음) 내가 다 해보니 그렇더라···. 대가만이 할 수 있는 얘기겠죠. 사실 작업하면서 윤독하는 데 가장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100번을 넘게 읽었으니까.


- 다음엔 뭐하지?

허 신부 : 번역을 끝내고 다들 ‘다음엔 뭐하지?’ 얘기했어요.(웃음)

안 수녀 : 과르디니의 「주님」 번역하자고. 또 이어갈 수 있는 게 책은 복잡했지만, 일주일에 한 번 모여서 같이 얘기하고 작업하는 게 좋았어요.

최 신부 : 번역은 고사하고 혼자라면 다 읽지도 못했을 책인데, 그래서 번역 작업 자체가 은혜로운 시간이었어요.

허 신부 : 은혜로운?

최 신부 : 은총이라고 할까? 풍요로운으로 하죠. 이런 식으로 작업했어요.(웃음) 덕분에 저희도 배우는 시간이었고, 출판사에서 오래 기다려주셔서 할 수 있는 만큼은 완성도 있게 작업했고요. 아마 2~3년만 늦었어도 못 했을 거예요. 우리 모두 눈이 침침해져서.(웃음)

김 신부 : 개인적으로는 2019년부터 서울에서 생활하게 됐는데, 번역하는 시간을 통해서 많은 위로와 가족적인 따뜻함을 느꼈고요.

허 신부 : 한국 사회는 다들 바쁘잖아요. 공부하는 사람들이 협업하기도 쉽지 않은데, 이런 기회가 있어서 감사했고, 이런 작업을 하는 것도 우리에게 주어진 좋은 역할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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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3-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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