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협화음의 온갖 소음으로 가득 찬 뭄바이 시내, 허름한 아파트에 살고 있는 남데브 아저씨.깊은 주름에 백발이 성성한 머리카락,시종일관 무표정한 얼굴에는 삶의 고단함이 묻어있다. 좁은 공간에 빨래와 온갖 살림이 사방으로 가득하고,아내는 쇳소리 닮은 목소리로 끝없이 잔소리를 해댄다. 늙은 형은 술에 취해 중얼중얼 흐느적이며 춤을 추듯 돌아다니고, 다 큰딸은 거실과 부엌을 오가며 연설원고를 읽다가 갑자기 쥐가 있다고 괴성을 지른다. 낡은 아파트 주변으로 아이들이 소리를 지르며 뛰어다니고, 기차 차단기에서의 땡땡 소리,철컥철컥 지나가는 기차, 자동차와 오토바이 경적 소리, 뭔지 모를 악기 소리…. 끊임없는 소음과 혼잡함에 지친 남데브 아저씨는 세상에서 가장 고요한 곳이라고 알려진 ‘침묵의 계곡’을 찾아 집을 나선다.
그의 여정은 여전히 시끄럽다. 떠들어대는 사람으로 가득 찬 기차, 귀신 소동을 일으키는 호텔,덜컹거리는 버스, 한적한 시골의 공사 차량까지 예상치 못한 소음들로 남데브는 괴롭다. 칠흑같은 사막 한가운데서조차 귀뚜라미가 찌르륵 댄다.더욱이 알 수 없는 게임을 함께해야 한다며 귀찮게 따라오는 12살 소년 알리크. 쫓아버리고 밀어내도 졸졸 따라다니며 재잘대는 알리크가 어느새 싫지 않은 존재가 되어 있었지만, 마침내 도착한 ‘침묵의 계곡’은 북적이는 관광객으로 넘쳐났다.남데브는 분노하며 좌절한다.
알리크는 부모님과 약속한 ‘붉은 성’ 게임을 같이 완수하자며 조른다. 게임의 규칙은 다음과 같다. 엄마, 아빠가 죽은 듯 누워 있으면 알리크는 붉은 성으로 가야만 하고, 그곳에 도착했을 때 비로소 다시 엄마, 아빠를 만날 수 있다.카스트 제도로 인한 죽음을 예상한 알리크 부모가 만들어 낸 게임이었는데, 남데브는 우연히TV뉴스를 통해 알리크의 부모가 명예 살인을 당했음을 알게 된다. 연민을 느낀 남데브가 알리크를 붉은 성(불교 사원)에 데려다 주고 돌아설 때, 붉은 승복을 입은 승려는 알리크의 머리카락을 밀고 있다. 우는듯 웃는 남데브 아저씨의 귀에 더 이상의 소음은 들리지 않는다.
주변 소음이 내면의 평화를 방해한다고 생각한 남데브는 고요를 열망했지만,그가 찾은 진정한 고요는 ‘소리 없음’이 아니었다. 아내의 잔소리, 형의 주절거림, 딸이 지르는 괴성은 끔찍한 소음이 아닌 남데브가 마음을 열고 들었어야 할 그들의 이야기는 아니었을까? 알리크에게 그랬던 것처럼….
이 영화의 첫 장면에 등장하는 ‘굳게 닫힌 문’이 마지막 장면에서 ‘활짝 열리며’ 남데브 아저씨가 들어온다.이제 그는 그토록 찾아 헤맸던 고요를 찾은 것이다. ‘침묵의 계곡’이 아닌 가족들이 기다리는 집에서.
“이 노래는 아무 소리도 듣고 싶어 하지 않는 한 남자의 이야기. 그건 그렇고 아시나요? 귀로 들어야만 마음에도 들린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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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미 라우렌시아 (백석예술대학교 영상학부 교수, 가톨릭영화제 프로그래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