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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향기 with CaFF] (232) 당나귀 EO

당나귀의 눈으로 본 세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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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서커스단에서 태어난 당나귀 ‘EO’(이오)가 주인공인 이 영화는 동물보호단체에 의해 서커스단에서 구조된 EO의 긴 여정을 그리고 있다.

영화 포스터를 보면 ‘당나귀EO’라는 타이틀과 함께 정돈된 회갈색 털의 맑은 눈망울을 가진 잘생긴 당나귀 얼굴이 크게 부각되어 당나귀와의 친근함을 다룬 자연 다큐멘터리나 애니메이션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런데 서커스 공연의 일부를 EO의 시선으로 담은 도입부의 불안하고 기이한 감각적인 연출은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는 EO의 특별한 상황을 직감하게 한다.

우울한 눈빛의 회색 당나귀 EO는 동물보호주의자들에 이끌려 세상 밖으로 나오지만 마구간이나 농장, 도살장에서 마주하는 일상 역시 낯설고 위협적이다. 서커스단에서 함께 공연했던 카산드라와 같이 울음소리에서 착안해 EO의 이름도 지어주고, 가족같이 샤워도 해주고, 생일도 기억하는 좋은 인연도 있지만, 어이없는 일로 폭행을 당하고 안락사 직전의 위기에 처하기도 한다.

영화는 인간 세상에서 EO가 겪는 일들을 통해 기쁨과 고통, 행복과 절망을 보여주는데 각각의 상황들이 우리들의 삶과 무관하지 않는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 EO가 지치고 힘들 때 카산드라와의 추억을 그리며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동물에 대해 무자비하고 무관심한 인간들에 대한 슬픔의 표현이고, 결국 EO가 소가 도축되는 도살장으로 입장하게 되는 이유라는 생각이 든다. 소들과 함께 이동하게 된 당나귀 EO의 자존감 높은 모습에서 죽음을 구걸하지 않는 당당함을 배운다.

이 작품에서 주인공 EO 역은 4마리의 당나귀가 연기했다는데, 그 품격 있는 모습은 어떤 배우도 따라갈 수가 없을 것 같다. EO의 슬픈 눈빛은 달라지지 않은 상황을 암시하고, 갇혀 있던 우리에서 나와 자연으로 도망치는 장면의 전위적인 영상에서는 감독 특유의 색채와 이미지를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이 영화의 영상만큼 중요한 요소가 사운드 효과인데, 주인공이 당나귀인 만큼 대사를 대신해 울음소리, 달리는 소리 등의 효과음과 중간중간 강한 느낌의 멜로디는 긴장감을 극대화한다. 도살장으로 이동할 때 나오는 비장하고 슬픈 음악은 EO의 파란만장한 삶의 무게를 잘 표현하고 있다.

EO의 내면세계를 독창적이고 세련된 영상과 사운드로 표현한85세 노장감독 예지 스콜리모프스키는 이 작품으로 바르샤바국제영화제 수상(2023년)을 비롯해 제75회 칸 영화제 심사위원상, 아카데미 국제영화상, 뉴욕 비평가협회상 등 다수의 영화상을 받았다.

이 영화를 보며 “하느님 보시기에 참으로 소중한 이들, 이 지구의 버림받고 잊힌 이들을 구하게 하소서”하는 ‘지구를 위한 기도’와 함께 파티마의 ‘용서의 기도’를 청한다. “당신을 믿고 찬미하며 의지하고 사랑하나이다. 당신을 믿지 않고 찬미하지 않으며 의지하지 않고 사랑하지 않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오니 용서해 주소서.”



10월3일 극장 개봉


 


이경숙 비비안나(가톨릭영화제 조직위원장, 가톨릭영화인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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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3-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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