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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향기 with CaFF] (235) 빅슬립

단잠이 절실한 길거리 소년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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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영화가 울림을 줄 때는, 그것을 만든 이의 마음과 보는 이의 마음이 만나질 때인 것 같다. 단순히 흉내를 낸 것인지 마음을 담아낸 것인지, 영화를 보는 이는 알 수 있다.

‘빅슬립’은 내가 올해 본 영화 중 가장 울림이 큰 영화였다. 도대체 울림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나는 그것이 영화를 만든 사람의 ‘진정성’에서 온다고 본다.‘빅슬립’의 감독 김태훈은 영화 속에 자신의 경험과 평소의 생각을 녹여 ‘진정성’을 담아냈고, 그것이 울림을 만들어냈다.

영화의 스토리는 단순하다. 우연히 만난 거리의 청소년 길호에게 기영은 자신의 공간 한 칸을 내어준다. 이렇게 시작된 그들의 만남은 그들이 지금까지 살아온 생활 방식을 조금씩 바꾸게 만들고,급기야는 변화를 끌어낸다.

기영의 말은 다정다감하거나 따뜻하지 않다. 들어와서 자라고 하면서도 당분간만이라고 못을 박는다. 길호를 부르는 호칭도 이름이 아닌, ‘야!’나 ‘새끼’ 같은 불퉁한 단어이고, 잠을 깨우는 것 역시 손이나 말이 아닌, 발로 툭 건드려서다. 사랑을 받은 사람이 사랑을 줄 수 있다고, 기영 역시 다정하고 친절한 말을 들으며 자라지 않았기에 자기에게 익숙한 방식으로 대하는 것이다. 아버지 같은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는데, 자기도 아버지를 닮은 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거칠고 투박한 그의 말투 속에 숨겨진 그의 진심은 온건하고 따뜻하다. 어쩌면 기영은 길호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보았기에 모른 체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길호는 때리는 새아버지를 피해 집을 나왔다. 집에서조차 편히 쉴 수 없는 어린 길호에게 세상은 마음 놓고 쉴 수 없는 곳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우연히 만난 기영이 아무런 대가 없이 자기 집에서 자라고 한다. 게다가 어른들이 흔히 하는 설교도 늘어놓지 않는다. 자기가 지금까지 만났던 어른들과는 다르다. 왠지 이 어른을 믿고 싶어진다.

영화 속에서 두 사람이 미주알고주알 서로의 처지를 늘어놓거나, 툭 터놓고 속 시원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은 없다. 친절한 설명도 없고, 맛깔나는 대사도 없다. 말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는 기영처럼 그저 툭툭 인물들의 상황을 던져줄 뿐이다. 관객은 최종 목적지에 무엇이 있을지를 기대하면서 감독이 던져놓은 빵부스러기를 따라 그가 이끄는 대로 따라간다. 그러면서 우리는 차츰차츰 이 영화에 빠져들게 된다. 드디어 종착지에 도착한다. 그리고 어떤 위로보다도 달콤한 단잠을 선물 받는다. 그 마지막 장면을 위해 감독은 묵묵히 걸음을 옮겼고, 그것이 그가 영화 속 인물들에게 선사하고 싶었던 순간이라는 걸 알 수 있다.

두 편의 단편 영화를 만든 후 김태훈 감독은 이 영화를 자신의 장편 데뷔작으로 내놓았다. 다음 작품을 빨리 만나고 싶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

11월 22일 극장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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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3-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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