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외방전교회 사제들이 편집, 68곡 중 24곡 지금도 널리 불려
현존하는 최초의 한국어 성가집 「죠션어셩가」(1924)
3/4·6/8박자 많고 선율 감미로워
‘천주가사(天主歌辭)’ 영향도 남아
첫 공식 성가집 「朝鮮語聖歌」
1년 먼저 나왔지만 초판 못 찾아
2024년은 현존하는 최초의 한국어 성가집 「죠션어셩가」 발행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한국에 신앙이 전파된 것은 1784년. 하지만 수차례의 박해로 신자들은 전례에 필요한 성가집도 제대로 만들지 못했다. 그러다 1923년 성 베네딕도회가 지금의 함경남도 원산 즈음인 덕원자치수도원구와 연계해 사용하기 위해 「朝鮮語聖歌」(조선어성가)를 발간했다.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장 박현동 아빠스는 “이는 한국 교회 교구 단위에서 펴낸 첫 공식 성가집으로, 성탄 즈음이면 세계인이 즐겨 듣는 ‘고요한 밤 거룩한 밤’(가톨릭성가 99번)도 이 성가집에 실려 처음으로 우리나라에 소개됐다”고 전했다. 그러나 「朝鮮語聖歌」(조선어성가)의 초판은 찾을 수 없는 상황이다.
「가톨릭성가」에 실려 지금도 불리고 있는 「죠션어셩가」 수록곡들.
현존하는 최초의 한국어 성가집은 1년 뒤 서울대목구가 발행한 「죠션어셩가」다. 1924년 8월 인쇄본으로 발행됐으며, 당시 서울대목구에서 사목하던 파리외방전교회 라리보(Larribeau) 신부와 비에모(Villemot) 신부가 편집한 성가집으로, 뮈텔(Mutel) 주교가 감준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성가집에는 5선 악보에 현대식 기보법을 사용한 68곡이 수록되어 있는데, 그 가운데 16곡의 출처는 현존하는 프랑스 성가집에서 찾을 수 있다. ‘주의 영광’(가톨릭성가 408번), ‘주 천주의 권능과’(77번), ‘구세주 빨리 오사’(91번), ‘구유에 누워계시니’(112번), ‘글로리아 높으신 이의 탄생’(101번), ‘오늘 아기 예수’(103번) 등 24곡은 「가톨릭성가」에도 수록돼 여전히 널리 불리고 있다.
1년 앞서 발행된 「朝鮮語聖歌」(조선어성가)가 독일 성가 위주라면, 「죠션어셩가」는 프랑스 성가 중심으로, 1년 차이지만 두 성가집에는 접점이 없다. 하지만 성 베네딕도회가 1928년 북한에서 발행한 「朝鮮語聖歌」(조선어성가) 2판에는 「죠션어셩가」 곡들도 추가되었다.
같은 해 대구대목구 남산동 성요셉성당 찬양대에서는 교구 최초의 성가집인 「공교 셩가집」을 만들어 사용했다. 성가집의 1부에는 그레고리오 성가, 2부에는 한국어 가사의 성가들이 담겨 있는데, 역시 상당수 곡을 지금의 「가톨릭성가」에서 찾을 수 있다. 발행인은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남대영(Deslandes Louis, 남산본당 제2대 주임) 신부다.
「죠션어셩가」와 「공교 셩가집」이 모두 파리외방전교회 사제들의 주도로 이루어진 만큼 초창기 한국 교회에는 프랑스 성가들이 널리 소개되고 불려졌다. 프랑스 성가는 주로 3/4, 6/8박자 계열이 많으며 선율이 감미롭고 부드럽다.
한편 당시 성가는 ‘천주가사(天主歌辭)’의 영향을 받아 4.4조로 이뤄진 곡도 있다. ‘수난 기약 다다르니’(가톨릭성가 115번)가 대표적으로, 서울대교구 성음악위원회 위원장 이상철 신부는 “이 곡은 천주가사와 프랑스 선율의 융합 과정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죠션어셩가」는 회중용 성가집으로 지나친 엘리트 의식을 버리고 교우 대중을 중심으로 사고하고 배려하는 사목적 마인드를 다시 한 번 상기시킨다”며 “당시 프랑스 신부님들의 노고에 감사하며, 우리 성가집도 끊임없이 개발하고 고유의 성가를 성장하도록 노력해야겠다”고 전했다.
서울 중림동 교회음악박물관에는 한국 교회의 성가집 형성 과정에 관한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죠션어셩가」는 물론, 이문근 신부가 펴낸 「가톨릭성가집」(1948년)과 차인현 신부(서울대교구 원로사목자)가 엮은 「가톨릭성가」(1985년)에 관한 자료도 확인할 수 있다.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