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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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향기 with CaFF] (243) 나의 올드 오크

이주민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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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 로치 감독의 ‘나의 올드 오크’는 시리아에서 온 난민 소녀 ‘야라’와 더럼(Durham)이라는 영국 북동부 작은 탄광촌에서 쇠락해가는 펍 ‘더 올드 오크’를 운영하는 ‘TJ’의 우정에 대한 이야기다. 나아가 이 둘로 대변되는 시리아 난민 공동체와 원주민 공동체의 관계를 다룬다.

이 영화는 켄 로치 감독의 전작들과 그 궤를 같이한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에서는 관공서의 복잡하고 관료적인 절차 때문에 정작 필요할 때 사회복지의 혜택을 못 받는 이슈를 다루었고, ‘미안해요, 리키’에서는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내몰리는 택배 노동자 이야기를 다루었다. 이번에 감독은 한발 더 나아가 자신의 시선을 세계적 정세로 넓혔다. 더럼에서 벌어지는 이 일은 세계 곳곳에 이주한 시리아 난민들과 원주민들의 관계이기도 하다.

야라가 이주해오던 날, 난민들의 이주를 탐탁지 않게 여기던 한 주민이 야라의 카메라를 고장 내고, TJ가 야라의 카메라 수리를 도와주면서 둘의 우정은 시작된다.

이 우정을 시작으로 원주민들에게 사랑방 같은 곳이었던 ‘더 올드 오크’에 시리아 난민들이 오가게 되고, 이곳에 난민들과 어려운 이웃을 위한 나눔의 공간이 마련된다.(이 장면은 흡사 성경 속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는 느낌이 들었다)

원주민들은 자신들의 공간을 빼앗긴 기분을 느끼며, 이런 상황을 고깝게 여기게 된다. 원주민들은 TJ를 비난하며 펍에 오지 않겠다고 하고, 시리아 난민 공동체와 원주민 공동체의 갈등은 깊어만 간다.

누군가 이주해오면, 원래 살던 주민들의 불만이 생길 수 있다. 그러지 않아도 힘든데 이주민들이 와서 더 힘들어진다고, 자기들의 몫을 빼앗아 간다고, 아무것도 없이 와서 혜택을 받는다고, 원주민들은 이주민들을 눈엣가시처럼 여기게 된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나라를 잃고 낯선 곳에 정착하기 위해 애쓰는 이들의 삶이 얼마나 고되고 팍팍할지 짐작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감독은 그들을 미화하지도 비난하지도 않으면서 상황을 다큐멘터리적인 시선으로 보여준다. 그의 영화는 사회 곳곳의 외면당하기 쉬운 문제들을 바라보게 하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생각하게 한다. ‘나의 올드 오크’에서는 시리아 난민 공동체와 원주민 공동체가 사실 모두 같은 처지에 있으며, 서로를 지지하고 연대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제시한다.

올해 88세가 된 감독은 인터뷰를 통해 이번 영화가 그의 마지막 장편 영화가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켄 로치 감독의 장편 영화를 다시 못 본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나, 다니엘 블레이크’, ‘미안해요, 리키’에 이어 ‘나의 올드 오크’를 볼 수 있어 행복했다. 그에게 감사와 존경을 전한다.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 남은 조각을 모으니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찼다.”(마태 14, 20)

1월 17일 극장 개봉
 


서빈 미카엘라 (가톨릭영화제 프로그래머 극작가, 연출가)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24-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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