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여 곳 3000여 작품 제작·설치
작품 위해 여러 분야 사람들 협력
“공동체로서 수상한 데 의미”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빛이 세상에 왔다.”(요한 1,9)
그래서일까, 성경에서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단어는 ‘빛’일 것이다. 성직자나 귀족들만 문자를 알던 중세시대부터 사람들은 성경 말씀을 서민에게 알리기 위해 수많은 그림과 조각으로 나타냈다. 그렇다면 눈에 보이지도, 손에 잡히지도 않는 빛은 어떻게 표현했을까?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 유리화가 아닐까 한다. ‘스테인드글라스(stained glass)’라는 말이 더 익숙한 ‘유리화’는 색유리를 이어 붙이거나 판유리 뒷면에 아교를 녹인 물질로 무늬나 그림을 그린 것이다. 햇빛을 받으면 본연의 색과 더해져 신비로운 빛의 향연을 펼친다. 그래서 유리화를 생각하면 자연스레 성당이 떠오른다.
15일 주교회의 문화예술위원회(위원장 서상범 주교)가 주관하는 제27회 가톨릭 미술상 시상식에서 특별상을 받은 ‘유리재’는 바로 이 유리화를 만드는 공방이다.
조상현(작가 겸 유리재 대표) : “유리화는 창에 설치되지만, 개인적으로는 창 자체라고 생각합니다. 빛을 받아야만 우리에게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거든요. 저희가 사용하는 유리는 모두 유럽에서 들여온 건데, ‘마우스 블론 글라스’라고 입으로 불어서 만들어요. 그야말로 장인의 숨결이 담긴 유리이고, 색깔도 한 장 한 장 다 다르죠.”
경기도 파주시에 위치한 유리재는 말 그대로 공방이었다. 고혹적인 유리화가 설치된 성당과 달리, 수많은 유리조각이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고, 디자인 샘플과 작업 도구들이 도처에 놓여있다.
현재 유리재는 조규석ㆍ규선ㆍ규후 삼형제와 조상현(조규석의 아들) 대표로 구성되어 있다. 대표 작가로 활동했던 프랑스 떼제 공동체의 마르크 수사는 지난달 19일 선종했다.
조규석(요한)ㆍ규선(베드로) 형제는 1980년대 ‘한국 유리화의 선구자’로 불리는 고 이남규(루카) 교수의 작업실에서 도제 수련을 받으며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과 원효로 예수성심성당, 전주교구 전동성당 등의 문화재 보수 복원, 혜화동성당을 비롯한 30여 개 성당의 유리화 제작 실무를 13년 동안 진행했다. 이후 오스트리아와 프랑스 등에서 수학한 뒤 마르크 수사, 막내 조규후 장인과 함께 공방을 열었다.
조규후 장인 : “형님들이 20대 초반에 이남규 교수님에게 배우기 시작했는데, 색을 보고 그냥 좋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도 많았는데, 지금까지 안 놓고 하셨어요. 저는 다른 일을 하다 뒤늦게 참여하게 됐는데, 보니까 그냥 하게 되더라고요.”
하지만 그 색을 찾는 과정이 가장 어려운 점이기도 하다. 유리화를 통해 드러나는 색은 장소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고, 같은 장소에서도 계절과 날씨, 시간에 따라 변하기 때문이다.
조규후 장인 : “정해진 색이 없다고 할까요. 공방에서는 이 색인데, 현장에서는 다른 색이 돼요. 그 동네에는 그 색이 없어요.(웃음) 유리화는 빛을 이용한 거라서 지역마다 색이 달라지고, 같은 장소에서도 햇빛의 강도에 따라 달라지거든요. 제작하는 입장에서는 그 색을 찾아가는 게 가장 어려워요.”
조상현 대표 : “그게 굉장히 매력적인 부분이기도 합니다. 하나의 빨간 유리화가 계절마다 다르고, 아침과 낮에도 달라지거든요. 오른쪽으로 한 걸음만 이동해도 빛의 각도가 달라지니까요.”
완성된 유리화는 물리적으로 한 점이더라도 빛에 따른 스펙트럼은 무한한 셈이다. 그런가 하면 유리화는 디자인을 시작으로 유리와 색을 정해 제작하고 설치하는 공정에 수많은 사람이 참여한다. ‘유리재’ 역시 1996년부터 20여 명의 국내외 작가들과 협력해 200여 곳에 3000점이 넘는 작품을 제작·설치해 왔다.
건강상의 이유로 당일 공방에 나오지 못한 조규석 작가 겸 장인은 “유리화는 시작부터 끝까지 많은 분이 참여하고, 이 공방에서 지금껏 여러 분야의 사람들이 더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협력해왔기 때문에 공동체로서 수상한 데 의미가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