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를 그리며 ‘아이구 좋아라, 아이구 좋아라’ 흥얼대는 한 어른을 본다. 그가 꿈꾸며 그린 세계가 우리 주변에 또 하나의 풍요로운 자연으로 살아있다는 사실이 경이롭다. 이 어른의 지혜가 담긴 흥겨움이 귀하고 기분 좋다. 영화 ‘땅에 쓰는 시’는 국내 1세대 조경가 정영선의 다큐멘터리다.
‘정영선의 사계절 이야기’라는 주제에 맞춰 그녀가 조경한 곳곳의 풍경과 철학이 담겼다. 폐정수장에서 친환경 공원으로 탈바꿈한 선유도 공원, 기존의 것을 토대로 아름답게 자연을 얹어 다른 공원과 차별화하면서도 길 사이사이가 서로 다른 이야기를 품은 듯 다정스럽다.
여의도 샛강생태공원은 국내 최초의 생태공원으로 황조롱이 등 희귀 동식물이 살고 있다. 벤치 하나 없고 동식물의 휴식과 수면을 위해 가로등도 설치하지 않았을 뿐더러 샛강이라는 이름에 맞게 아름다운 물길을 살리려 했다. 편의시설 하나 없는 것에 시민들의 반발도 있었지만, 샛강 따라 걷는 것만으로 만족하면 어떨까.
경춘선 숲길은 폐철길을 공원으로 탈바꿈시키면서 다양한 테마를 둔 뉴트로(New+retro) 명소다. 기찻길 옆에 작은 경작지를 두어 텃밭을 일구고 싶어하는 이들과 공유함으로써 지역민들의 소박한 꿈도 담았다.
호암미술관 희원, 다산 생태공원 등 그의 손길은 많은 공원에서 빛난다. 바다는 바다대로, 산은 산대로, 숲은 숲대로 그 고유의 아름다움을 알고 그것이 살아나도록 물길과 숲을 돌본다. 자연의 깊이를 알고 자연에서 지혜를 배운다. 그는 겨울이 아름다워야 봄도 아름답고 봄이 아름다워야 여름도 아름답단다. 당연한 말인데 순간을 보면서 무언가를 결정하고 움직이는 우리에게 긴 안목과 정체성을 일깨운다.
그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맡으면 몇 차례씩 그곳을 찾는다. 가능한 한 우리 환경에 잘 적응할 나무나 식물을 찾고 우리 것의 아름다움이 어떻게 펼쳐질 수 있는지 헤아리며 하나하나 손길을 얹는다. 조경을, 꽃을 예쁘게 장식하는 것쯤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에 안타까워하며 오늘 이곳에 선택되는 꽃과 풀 한 포기, 한 그루의 나무가 먼 후일 이 땅을 살아갈 미래 후손들까지 생각해야 함을 강조한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공간과 사람 간의 연결사라고 칭한다. 얼마나 멋진 자아정체성인가.
그래서일까, 그의 손길과 철학이 담긴 장소는 넘침이 없이 정스럽고, 우리 향내가 나며 고유한 아름다움이 있다. 지금도 좋지만, 그 유지대로 잘 커 준다면 앞으로도 더 기품 있는 우리 정원이 될 거라는 기대를 하게 한다.
있는 듯 없는 듯 영화 이면에 흐르는 음악은 그가 채색한 자연 풍광과 어우러져 마치 나비처럼, 바람처럼, 새소리처럼 다가온다. 국악 기반의 다양한 음악으로 국제무대에서 활약하고 있는 안이호 소리꾼의 음악이다. 절묘하다.
한 인간의 깨어있음이 얼마나 많은 사람과 자연을 살리는지 깨달으며 멋지게 인생을 펼쳐오신 어른들께 깊은 감사와 경외감을 드리게 하는 귀한 영화다.
손옥경 수녀(성바오로딸수도회, 가톨릭영화제 프로그래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