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5월 광주 배경 블랙 코미디
연극 ‘짬뽕’의 중국집 춘래원 식구들이 5·18의 비극을 예상하지 못한 채 평화로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 극단산 제공
거짓 정보로 상황 제대로 모르고 그날을 겪은 소시민들 이야기
주제 무겁지만 객석에선 웃음꽃...‘위트와 높은 몰입도’ 롱런 비결
1980년. 스마트폰, 아니 인터넷도 존재하지 않았고 당연히 배달 어플도 없어서 이른바 중국집이 음식 배달을 독점하던 시절이다. 올해로 20주년을 맞은 창작연극 ‘짬뽕’은 그해 5월 광주의 한 중국집 ‘춘래원’을 배경으로 한다. 주인 ‘신작로’가 10년간 고생고생해서 마련한, 이제 겨우 인생에 봄이 왔다는 의미로 지은 춘래원에서 여느 소시민처럼 아웅다웅 살아가는 사연 많은 네 사람은 그렇게 5·18을 맞는다.
윤정환(프란치스코) 연출은 2002년에 극을 썼다. 그해 5·18은 한일 월드컵에 묻혔고, 한 선배가 ‘5·18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물음에 ‘코미디’라고 답한 것이 시초였다. “있을 수 없는 일, 현실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났으니까 코미디라고 말했어요. 저는 광주와 연관도 없고 역사학자도 아니지만, 그때 우리가 월드컵을 개최할 수 있었던 것도 과거 많은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했고요.”
연극 ‘짬뽕’은 5·18을 배경으로 한 블랙 코미디다. 배달을 가던 ‘만식’이 공짜로 짬뽕을 내놓으라는 군인들과 실랑이를 벌이고, 그 일이 광주에 엄청난 혼란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5·18이 짬뽕 한 그릇 때문에 일어났다는 블랙 코미디 연극 ‘짬뽕’의 한 장면. 극단산 제공
연극을 처음 선보인 건 2004년. 하지만 당시만 해도 암묵적으로 문학이나 영화 등에서 5·18민주화운동을 함부로 다루면 안 되는 분위기라 작품을 무대에 올리기까지 우려의 목소리가 컸다. 그러나 걱정과 달리 공연은 3주 내내 만석이었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받은 지원금으로 같은 해 광주에서 바로 공연할 수 있었다.
그리고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1년을 제외하고는 지금껏 한 해도 빠짐없이 이맘때가 되면 마치 제사 지내듯 무대에 올리고 있다. 급변하는 사회와 그만큼 다양한 관객들의 구미에 맞춰 숱한 수정과 보완작업이 이뤄졌을 거라 예상하겠지만, 내용부터 세트까지 손댄 것은 거의 없단다.
윤 연출은 “정치적 이슈를 다뤘다면 이렇게 롱런하지는 못했을 것”이라며 “당시 광주에 있던 대다수 사람이 차단되고 거짓된 정보로 상황을 제대로 몰랐고, 그 안에서 우리처럼 평범한 사람들, 우리 가족의 이야기를 담아내 지금도 다 함께 공감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아직 대한민국에 유효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며 “극을 통해 5·18을 더 알아가고, 마음으로 역사를 바라보면 좋겠다”고 전했다.
(사)한국물가정보 자료를 보면 1980년 평균 348원이던 짜장면 가격은 지난해 6361원으로 집계됐다. 짜장면이 20배 오르는 동안 세상은 어쩌면 그보다 큰 폭으로 바뀌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2024년 5월에는 당연한 것들이 1980년 5월에는 당연하지 않았고, 지금 보면 너무나 부당한 일들이 자행되기도 했다. 그래서 춘래원 식구들처럼 이유도 모른 채 그날을 겪은 평범한 시민도, 총을 든 군인도 모두 피해자인 셈이다.
무거운 주제와 달리 ‘짬뽕’ 객석에서는 웃음꽃이 끊이지 않는다. 무대에서 실제로 짜장면과 짬뽕을 먹으며 관객들의 오감을 자극하는가 하면, 소극장 공연답게 8명의 배우가 수많은 인물로 분하는 모습은 무대 언어만의 색다른 재미를 맛보게 한다. 위트 있고 몰입도 높은 전개 끝에 극의 주제를 선명하게 드러낼 때는 이 작품의 20년 내공을 실감하게 한다.
연극은 6월 2일까지 서울 대학로 미마지아트센터 물빛극장에서 공연된다. 문의 02-713-0116, 극단산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