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봄 풍성한 무대 이어져
서양음악사에서 종교음악은 큰 축을 담당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대가들의 작품 대부분이 성경 말씀이나 그리스도교 정신을 담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올봄 잇따라 무대에 오르는 헨델·바흐·멘델스존의 종교음악을 소개한다.
헨델의 ‘시간과 깨달음의 승리’
후기 바로크 음악의 정수를 감상할 수 있는 오라토리오 ‘시간과 깨달음의 승리(Il Trionfo del Tempo e del Disinganno)’가 29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공연된다.
이 작품은 헨델(1685~1759)이 1707년에 지은 첫 번째 오라토리오(종교적인 극음악)로, 주인공 ‘아름다움’이 현재의 ‘즐거움’에서 벗어나 ‘시간’과 ‘깨달음’의 도움으로 내면의 성장을 이루는 과정을 담고 있다. 당시 저명한 예술 후원자이자 작가였던 베네데토 팜필리 추기경의 대본을 악보에 옮긴 것이다.
‘시간과 깨달음의 승리’는 아름다움·즐거움·깨달음·시간이라는 의인화된 존재들이 삶과 죽음·인간의 본질을 탐구하는 철학적인 담론이 담긴 작품이다. ‘아름다움’에게 ‘즐거움’은 현재의 쾌락을 즐기라고 유혹하는 반면 ‘깨달음’과 ‘시간’은 모든 아름다움과 즐거움은 결국 사라지게 된다며 좀더 종교적이고 도덕적인 이상을 제시한다.
‘음악의 나라’ 이탈리아에서 대가들과 교류하며 주목 받은 20대 초반, 젊음과 즐거움이 충만했을 청년 헨델이 완성했다는 점에서 더욱 흥미로운 작품이다. 이탈리아 오페라의 영향을 받은 화려한 아리아와 콜로라투라(기교적이고 화려한 꾸밈음) 기법도 일품이다. 극 중 ‘가시는 놔두고 장미를 꺾어라’는 이후 오페라 ‘리날도’의 유명 아리아인 ‘울게 하소서’의 밑그림이 된다.
이번 공연은 고음악 지휘의 거장 르네 야콥스가 이끄는 시대악기 전문 B’Rock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감상할 수 있다. 야콥스와 여러 차례 협연한 소프라노 임선혜(아녜스)씨가 ‘아름다움’을 맡았다. 소프라노 카테리나 카스페르, 카운터테너 폴 피기에, 테너 토머스 워커도 합류한다. 4월 2일 통영국제음악제 무대에서도 감상할 수 있다.
바흐의 ‘요한 수난곡’
사순 시기 그리스도의 수난과 십자가 죽음을 묵상할 수 있는 오라토리오 ‘요한 수난곡’은 4월 9일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공연된다. 서울모테트합창단(지휘자 박치용)의 제129회 정기연주회다.
바흐(1685~1750)가 1724년 작곡해 그해 주님 수난 성금요일에 초연한 것으로 알려진 ‘요한 수난곡’은 바로크 음악의 모든 형식을 총망라한 대작으로 손꼽힌다. 요한 복음서를 기반으로 자유 가사가 더해지며, 합창과 아리아 사이에 줄거리를 해설하는 복음 사가가 등장하는 것이 특징이다. 가톨릭 성가 75번 ‘주 그리스도 우리 왕’, 169번 ‘사랑의 성사’ 등은 ‘요한 수난곡’에서 가져온 곡이다.
멘델스존의 ‘시편 42’
그레고리안 성가와 시편을 무대에서 만날 수 있는 공연은 4월 16~17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에서 만날 수 있다. 박동희의 객원 지휘로 열리는 서울시합창단의 명작 시리즈 ‘합창, 피어나다’. 이번 공연은 오르간과 함께하는 1부, 봄과 자연을 담은 2부로 구성된다.
그레고리안 성가 특유의 아름다우면서도 강렬한 리듬을 담은 벤저민 브리튼의 ‘페스티벌 테 데움(Festival Te Deum, Op. 32)’으로 문을 연 1부는 멘델스존(1809~1847)의 ‘시편 42(Psalm 42)’로 마무리된다. 오르가니스트 이수정의 연주와 다양한 합창 기법으로 “암사슴이 시냇물을 그리워하듯 하느님, 제 영혼이 당신을 이토록 그리워합니다”로 열어가는 시편 42장을 노래한다. 2부에서는 다채로운 우리 가곡과 흑인 영가 등을 즐길 수 있다. 바이올리니스트 김지영의 연주가 더해진다.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