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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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성월 특집] 살아남은 자, 순교한 자, 기억하는 자의 이야기 ① 한티 순교 성지

- 순교자 이선이 남편이자 배 스테파노 아버지 ‘배정모’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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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나니의 칼춤 아래서도 꿋꿋하게 신앙을 지켰던 우리 선조들. 목숨을 버려 영생을 택했던 그들도 과연 죽음 앞에서는 어떠했을까. 가톨릭신문은 순교의 순간, 인간적인 고뇌와 두려움에 떨었을 신앙선조들의 솔직하고 인간적인 면모를 추적하는 순교자성월 기획 시리즈 ‘순교한 자, 살아남은 자, 기억하는 자’를 연재한다. 순교의 순간과 현장을 생생히 되짚어봄으로써 목숨을 내어놓고 신앙을 증거한다는 것이 얼마나 두렵고 고통스런 순간인지를 되새겨보고자 한다. 신앙은 그만한 가치가 있음을 또한 우리는 순교한 선조들의 삶에서 배운다. 본문은 당시 상황을 극적으로 묘사하기 위해 1인칭 이야기로 재구성한다.


‘끼익-’

어두운 방안으로 햇빛이 한 줄기 숨어든다. 정모는 몸을 뒤척이며 다급히 소리쳤다.

“그 문 닫게, 어서!”

“이보게, 정모. 뭐라도 좀 먹어야 하지 않겠는가. 자네가 이러고 있으면 저 어린 것들은 어쩌란 말인가.”

“……”

“수십일 틀어박혀 이러고 있는다고 죽은 사람이 살아돌아오는가? … 산 사람은 살아야지.”

죽은 듯 늘어져 있던 정모의 입이 열린다. 움푹 패어진 눈, 어디를 보는지 알 수 없는 초점 잃은 그 눈 위에 물기가 맺힌다.

“…. 산 사람? 자네 눈에는 내가 살아있는 사람으로 보이는가? 처자식이 그 꼴로 죽어가는걸 보고만 있었던 내가…? 거기다 이 목숨 하나 부지하겠다고 천주님을… 외면했네. 그 관가 놈들 앞에서, 이 입으로, 다시는 천주님을 믿지 않겠다 말했단 말일세.”

“… 그래도 ….”

“나는… 나는…. 하늘을 볼 수가 없네. 아직도 뻔뻔히 움직이는 이 몸뚱이가 원망스럽고, 천주님 앞에 부끄럽고 두려워서 저 문을 나설 수가 없다네…. 그 문, 닫아주게나.”

“정모, 이 사람아….”

문이 닫히고 방안 익숙해진 어둠 속에서 정모는 벌써 골백번은 되풀이한 ‘그 날’의 기억을 다시 떠올리며 중얼거린다.

“참 징그럽게도 질긴 목숨…. 이깟 목숨 뭐라고…, 천주님, 저를 용서하지 마시오….”

골바실에서 신나무골, 그리고 한티로…

칠곡 골바실(국우동)에 살던 지난 날, 시집 온 선이도, 딸과 세 아들도 선친이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천주님을 함께 섬겼다. 씨를 뿌리고 결실을 거두며 순리에 따라 사는, 화평한 날들이었다. 경신년(1860) 시작될 즈음, 호열자병(콜레라)으로 각지에서 수천의 사람이 죽어나간다는 불길한 소식과 함께 포졸들이 ‘천주 섬기는 이’들을 잡아내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신유(1801)년과 기해(1839)년에 천주교인들을 향해 무자비하게 칼날을 겨눴던 이들의 자식들이 좌·우 포도대장이 되면서 아비들이 했던 그 짓을 되풀이하고 있다는 전언이었다. 임금도 조정도 그 칼질에 동조하지 않았으나, 이 우둔한 자들은 서양인 신부를 잡아내면 나라에서 그 공을 인정해 줄 것이라 믿고 온 나라를 휩쓸고 다닌다 했다.

관아(官衙)가 가까이 있는 마을은 위험했다. 자정을 넘어 집을 나섰다. 전답도 팽개치고 세 자식과 부인을 이끌고 향한 곳은 30여 리 떨어진 신나무골(현재 경북 칠곡군 지천면 연화동 중화리). 경기·충청 지방에서 칼부림을 피해 도망 온 우리 교우들이 사는 곳이었고 신부님들이 오시면 찾아가서 성사를 받곤 하였기에 익숙한 길이었다.

며칠이나 지냈을까, 귀신같은 포졸놈들이 그곳으로 쳐들어왔다. 웬 아낙의 비명소리를 듣고 벌떡 일어나 식구들을 앞세우고 도망을 쳤다.
“저기 놈들이 도망간다. 쫓아라!”

죽을 힘을 다해 뛰고 또 뛰었다. 천주님의 가호일까, 우리 일가족 5인(부 배정모, 모 이선ㄴ이, 16세 배 스테파노(본명 확인 불가, 속칭 배도령), 11세 용철, 4세 용덕)은 신나무골에서 무사히 벗어났고 더 이상 쫓아오는 이들의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힘이 다해 바위 위에 앉았을 때, 내 품안에 있던 네 살 박이 용덕이는 너무 놀라 꺽꺽 거리는 숨만 내쉬고 있었다.

지독히도 추웠지만 발을 멈출 수 없었다. ‘달아나야한다. 내가 멈추면 이 어린 것들이 죽는다.’ 한 겨울, 들짐승도 보이지 않는 그 산길 20여 리를 뛰고 또 뛰어, 긴 고갯길 여붓재를 넘어 가산(992m)의 갈골 골짜기를 타고 산 속에 숨어있는 교우들의 또 다른 피난지 한티(칠곡군 동명면 득명동)에 당도했다.

경신((庚申)1860)년 2월 8일, ‘그 날’의 기억

이미 소식이 전해져 다들 몸을 피한 듯, 마을 움막들에는 인기척이 없었다. 기력이 다해 주저앉는 선이와 아이들을 이끌고 사기를 구워내는 굴로 몸을 숨겼다.

용철이, 용덕이가 제 어미 품으로 파고들며 춥다고 아우성이다. 선이는 나를 바라보며 아이들을 다독였다.

“괜찮다, 괜찮다. 천주님이 우리를 보살펴 주실게야.”

얼고 부르터져 엉망이 된 발을 주무르고 있을 때, 굴 입구에 포졸들이 나타났다.

“찾았다! 여기! 놈들이 숨어있다!”

무자비한 손길에 머리채를 잡혀 굴 밖으로 끌려나와 무릎이 꿇려졌다. 용을 쓰며 버틸 기력도 남아있지 않았다. 놈들의 목소리가 머리 위에서 울렸다.

“너희들은 천주교를 버리겠느냐? 그렇지 않으면 이 자리에서 죽여버리겠다.”

“…….” 대답할 수가 없었다. 천주교인들은 관가에 보고도 없이 현장에서 죽인다는 이야기를 익히 들은 바였다.

“믿지 않는다 말하라, 그러면 살 수 있다.”

죽는다, 죽는다, 여기서 죽는다…? 두려웠다. 내 의지와 달리 입 밖으로 뱉어버린 말.

“…. 앞으로는…, 앞으로는 믿지 않겠소.”

내 목소리에 내가 놀라 눈만 깜박이고 있으니 포졸 하나가 나를 일으켜 한 쪽으로 밀어 버렸다. 그리고 용철이와 용덕이를 내 쪽으로 보냈다.

“잘했다, 국법에 15세 미만자는 신문하지 않는다 하니 이 아이들은 데리고 있어라.”

그리고 모두의 눈이 선이에게로 향했다. 바닥으로 내리 깐 눈, 하지만 그 목소리만은 선명히 들려왔다.

“나는…, 이 자리에서 죽더라도 성교(聖敎)를 믿겠소.”

질끈 눈을 감았다. 연이어 장손 스테파노의 또렷한 목소리도 들려왔다.

“나는, 죽어도 성교(聖敎)를 믿겠소.”

포졸들의 욕지꺼리에 감았던 눈을 떴다. 포졸들이 달려들어 선이와 스테파노의 웃옷을 벗기고 있었다. 차가운 겨울 바람에 드러난 속살. 선이는 팔로 앞가슴을 가리려 했지만 무자비한 놈들은 그 손을 뒤로 결박하여 나무에 달아매었다.

‘학춤이다….’

죄인의 팔을 공중에 달아매어 놓고 네 사람이 번갈아가며 매질을 하는데 수 분 후 혀가 빠져 나오고 입에서 거품이 흘러내릴 때 땅에 내려 쉬게 하지 않으면 그대로 죽어버린다는 그 형벌.

계속되는 매질에 앙다문 선이와 스테파노의 입에서 비명이 새어나오고 혀가 삐죽이 빠져나오자 포졸들은 둘을 땅으로 내렸다. 버틸 힘이 없어 그대로 쓰러져버리는 몸.

“마지막으로 묻겠다. 그래도 천주교를 버리지 않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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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08-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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