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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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오로 해 심포지엄] 지금 한국교회에 필요한 건 바오로 영성

발제1 신약성경을 통해 본 바오로 선교(김영남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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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교회의 복음화위원회와 평화방송ㆍ평화신문이 19일 바오로의 해를 기념해 공동 주최한 `바오로 선교의 한국적 적용` 심포지엄에서 발표된 발제 논문 2편은 국내 바오로 신학 관련 논문들 가운데 보기 드문 수작(秀作)이라는 평을 들었다. 두 논문을 요약, 소개한다.

▨ 발제1. 신약성경을 통해 본 바오로의 선교(김영남 신부)


 
▲ 김영남(가톨릭대 교수) 신부
 

 한국교회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세계 다른 나라 교회들이 부러워할 만큼 놀라운 외적 성장을 거듭했다. 그러나 성장 이면에 쉬는신자 급증ㆍ결속력 약화 등 그림자가 있다.

 이런 현상 앞에서 다음과 같은 근본적 질문을 하게 된다. 선교는 왜 하는가? 외적 지표들만 갖고 선교성과에 관해 말할 수 있는가? 바오로 서간과 루카가 사도행전에서 제시하는 바오로의 모습을 통해 이에 대한 답을 찾고자 한다.

 바오로의 선교관을 알아보는 데 대단히 중요한 문헌이 갈라티아서 1장 15-16절이다.

 "그러나 어머니 배 속에 있을 때부터 나를 따로 뽑으시어 당신의 은총으로 부르신 하느님께서 기꺼이 마음을 정하시어, 내가 당신의 아드님을 다른 민족들에게 전할 수 있도록 그분을 내 안에 계시해 주셨습니다. 그때에 나는 어떠한 사람과도 바로 상의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선교활동 근거는 하느님의 은혜로운 부르심과 계시이다. 또 하느님의 교회를 박해하러 가는 중에 겪은 다마스쿠스 회심 체험은 그의 영성과 신학 원천이다. 그는 하느님 부르심의 목적이 "그분을 복음으로 선포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며, 선교 영역은 "다른 민족들 가운데서"라고 고백한다.

 1코린 15,8-10은 `부르심`과 `선교(복음선포)`와 관련해 빼놓을 수 없이 중요한 대목이다. 여기에서 그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와의 만남과 이 만남에 근거하고 있는 복음선포 활동의 은총적 성격을 찬미하고 있다.

 바오로 선교의 궁극적 목표는 사람들이 복음을 믿음으로 받아들여 구원을 얻도록 하는 것이다. 구원은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해 선사되기 때문에, 바오로는 능력이 닿는 한 여러 곳으로 가서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 그들이 믿음을 가지게 하려고 했다.

 # 바오로는 독불장군 아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바오로를 옹고집쟁이이며 다른 사람들과 협력을 못하는 외톨이로 알고 있는데 그건 오해다.

 그는 다마스쿠스 체험 이후 바로 선교여행을 떠난 것이 아니라 기존 교회(예루살렘과 안티오키아)와 연결돼 있으려고 노력했다. 또 선교활동을 하면서 많은 협력자들을 얻었다. 신앙 공동체가 형성된 곳에는 그곳 교우들 가운데서 공동체를 이끌어 갈 남녀 협력자들을 선발해 그들을 양성하려고 힘썼다. 오늘날 우리가 팀워크라고 부르는 것을 작동시켰다.

 # 바오로 선교의 신학적 기초는?
 바오로 선교의 원동력은 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난 하느님 사랑이다. 바오로가 제시하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사랑의 십자가다. 또한 하느님 은총은 십자가 죽음을 통해 이뤄진 구속(救贖) 또는 속량(贖良)의 은혜이다. 우리는 여기서 바오로 선교(신학)의 출발점을 확실히 볼 수 있다.

 바오로에게 복음은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사건을 통해 마련하신 구원으로 모든 이를 초대하는 소식이었다. 이 때문에 이 초대에 참여하는 것은 어느 특정 민족이나, 특정 신분 계급에만 제한돼서는 결코 안 된다고 보았다.

 이민족들이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생활을 시작하려고 할 때, 유다인이 아닌 그들에게까지 할례와 음식과 관련된 각종 모세율법을 의무적으로 지키라고 강요하는 것은 결국 유다인이 되라고 강요하는 것이고, 그런 행위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지니고 있는 자유를 빼앗는 행위이며, 복음의 진리에 어긋나는 행위였다.

 사도행전 저자 루카에게 바오로는 땅 끝에 이르기까지 달려가려는 그리스도의 증인이었다. 그 모습은 "성령께서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힘을 받아,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 그리고 땅 끝에 이르기까지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사도 1,8)라는 말씀에 담겨 있다.

 예루살렘은 매우 중요한 신학적 의미를 지닌다. 루카에게는 사도들이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는 일을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한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크다. 예루살렘은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곳, 당신의 구원사업을 완성하신 곳이기 때문이다.


 
▲ 사도 바오로는 그분(예수 그리스도)을 복음으로 선포하기 위해 땅 끝에 이르기까지 달려간 그리스도의 증인이다.
사진은 로마 성바오로대성당에 있는 성 바오로 사도상.
 

 # 예루살렘 사도들과 연대했다
 바오로의 선교활동에서 중요한 선교기지 역할을 한 곳으로 묘사돼 있는 안티오키아도 사실 예루살렘과 긴밀히 연결돼 있다. 예루살렘 교회는 안티오키아에 바르나바를 파견하고, 이민족들의 선교와 관련해 문제가 생기자 안티오키아 교회는 예루살렘에 대표단을 파견하는 등 예루살렘은 사도행전에서 분명히 여러 교회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

 초창기 그리스도교의 근본적 체험의 하나는 성령의 활동에 대한 체험들이다. 성령 체험은 `성령의 복음서`라 불리는 사도행전에 가장 생생하게 묘사돼 있다. 이에 따르면 선교활동은 성령의 힘으로 하는 것이었다. 사도들은 오순절에 성령을 받은 후부터 주님께서 살아 계시는 것을 믿고 아무런 두려움 없이 기쁘고 담대하게 유다인들과 이민족들 앞에서 증언할 수 있게 된다.

 바오로의 선교목표는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믿고 살아가도록 이끌어 줌으로써 그들이 구원을 받게 하는 데에 있다. 한국교회도 목표를 좀 더 분명하게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에 둬야 겠다.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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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08-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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