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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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선교현장을 가다]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의 징검다리'

작은형제회의 러시아 연해주 우수리스크 타우복지관(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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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은형제회 김용철 신부는 못하는 게 없는 만능 재주꾼이다.

 하수도가 막혀 화장실이 물바다가 되면 하수도 수리공이 된다. 낮에는 인터넷이 연결되지 않아 옥상과 사무실을 오르락내리락 하고, 저녁에는 고장난 직원용 컴퓨터를 고친다. 고장난 세탁기도 직접 수리한다. 복지관 건물의 인터넷망 설치공사도 선을 사다가 직접 했다. 경비를 절감하려면 어쩔 수 없다.

 수위가 갑자기 그만둘 때에는 밤에 수위실도 지킨다. 수위실은 단순히 복지관 경비만 하는 곳이 아니다. 한밤 중에 행려자가 찾아오면 일단 수위실에서 재워야 한다. 결핵이나 전염병에 대한 병원 건강검진없이 행려자를 공공시설에 들여보내는 것은 법으로 금지돼 있기 때문이다. 수위실은 엄동설한의 거리와 따뜻한 잠자리가 있는 복지관 사이의 간이역이다.


 
▲ 아기예수 탄생성당 현관에 걸려 있는 그림 한 점이 유독 눈길을 끈다. 프
란치스칸들이 마굿간에 찾아가 아기 예수를 경배하고 있다.
 

 # 눈 내리는 한겨울 밤 수위실에서
 김 신부는 눈내리는 겨울 밤에 복지관 문을 두드렸던 27살 청년을 잊지 못한다. 4년 복역을 마치고 출소한 그는 어머니와 이복 형제들이 사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어머니는 곧 돌아가셨다. 이복 형제들은 장례를 치른 뒤 집을 팔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하루 아침에 갈 곳이 없어진 그는 거리에서 술로 지새다 우스리스크시로 흘러 들어왔다. 외로움에 떠는 그에게 집ㆍ가족ㆍ친구가 되어준 것은 술과 마약뿐이었다. 그는 동사(凍死) 위험이 높은 영하 27도의 추위보다 희망 없는 삶을 더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는 그날 밤 담배 연기 자욱한 수위실에서 메마른 삶의 허물을 벗겨내며 한없이 눈물을 쏟았다.

 김 신부는 성 프란치스코의 `평화의 기도` 중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전하는 도구가 되고 싶어한다. 행려자 복지의 불모지 러시아에 와서 온갖 고생을 하며 타우복지관을 개관한 이유이기도 하다. 김 신부에게 타우복지관은 `희망의 징검다리`다. 그래서 절망보다는 희망을 노래하려고 한다.

 "행려자들이 `사랑`이라는 것을 조금씩 알아가요. 동상에 걸려 발가락 10개를 모두 절단해 목발을 짚는 행려자가 어느날 보니까 시각장애 행려자의 식사를 도와주고 있더라고요. 엄청난 변화입니다. 그들은 누구의 도움을 받아 본 적도 없고, 누구를 도와준 적도 없는 사람들입니다. 또 우수리스크시 당국에서 올 연말에 지원금 1600여만 원을 보내주기로 했어요. 시 예산의 민간복지시설 지출은 처음일 뿐만 아니라 획기적 변화입니다."

# 500끼니 식사비를 내놓은 행려자
 러시아의 사회주의식 복지제도는 한국과 많이 다르다. 그동안 국가가 국민복지를 전적으로 맡아왔기에 민간인, 그것도 이방인 수도자가 와서 행려자들을 돌보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더욱이 행려자는 보호대상이라고 여기지도 않는다. 이 때문에 김 신부는 복지관 건축허가를 받아내고, 시 예산 지원을 관철시키느라 시청을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었다. 김 신부는 연해주에서 행려자 복지모델을 만들어가는 중이다.

 김 신부는 특히 행려자 알렉산드르 아두시께비치(45)씨를 침이 마르도록 칭찬한다. 그는 밤에는 건설현장 경비원으로 일하고 낮에 복지관에서 잠을 잔다. 알코올과 마약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살겠다는 의욕이 대단하다. 그런데 며칠 전 그가 "복지관 보도블럭 공사하는데 보태라"며 1000루블(우리돈 4만 원)을 선뜻 내놨다. 복지관 한끼 식사에 2루블을 내니까 500끼니 값에 해당하는 큰 돈이다. 김 신부가 기뻐하는 것은 꽁꽁 얼어붙은 그들 내면에서 사랑의 싹이 돋아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김 신부는 "행려자의 70가 감옥생활 경험이 있는 터라 청소도 잘한다"는 칭찬도 덧붙였다.

 "나그네의 외투를 벗긴 것은 바람이 아니라 햇볕입니다. 계속 사랑하고 베풀면 그들 내면에 깃든 착한 본성이 살아납니다. 목발을 짚는 행려자가 시각장애인을 돕는 모습을 보는 순간 착하고 온유하신 하느님을 느꼈어요."


 
▲ 우수리스크의 가톨릭 현존을 알리는 아기예수 탄생성당.
고려인과 한국 유학생들도 주일미사에 참례한다.
 

 하지만 김 신부는 다른 한편에서 숱한 절망과 싸운다. 희망의 나무를 심기 위해 기꺼이 받아들이는 도전들이다.

 2001년 연해주에 첫 발을 내딛었을 때, 사방 어디를 둘러봐도 가톨릭의 흔적이 없었다. 김 신부는 시베리아 벌판에 홀로 서 있는 것처럼 절망적이었다. 우연히 폴란드 출신의 가톨릭 신자 마리아 할머니를 찾아내 함께 미사를 봉헌했다. 한동안 마리아 할머니와 단 둘이 평일미사를 봉헌했다. 그리고 2004년 연말 개인집을 개조해 마련한 성당 지붕에 드디어 십자가를 세웠다. 신자 30여 명의 우수리스크 아기예수 탄생성당은 그렇게 출발했다. 정교회 국가 러시아에서 가톨릭은 아직 `소수의 양떼`이다.

 개정된 러시아 비자법도 김 신부를 절망의 늪으로 밀어넣는다. 종교ㆍ문화ㆍ교육ㆍ비정부기구(NGO) 관련 외국인은 3개월 체류허가밖에 받지 못한다. 다시 체류허가를 받으려면 본국으로 돌아가서 다시 비자를 신청해야 한다. 종교인에게 이 법이 확대, 적용된 이유는 러시아 정교회의 배타적 입김 때문이라는 게 현지 여론이다. 이 때문에 외국 수도자와 성직자들이 안타깝게도 러시아를 속속 떠나고 있다. 미국 수도자가 3개월마다 본국에 가서 비자를 갱신하려면 그 비용을 감당할 수가 없다.



가톨릭평화신문  2008-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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