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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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대림, 그 기다림의 미학 - ''기다림''에 대하여

안성철 신부 (성 바오로 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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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은 이 순간까지 당신을 기다리십니다”

나는 성격이 매우 급하다. 여유를 가지고 기다리지를 못한다.

‘우물에서 숭늉 찾는다’라는 속담은 아마 나 같은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인 것 같다.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거나,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릴 때도, 컴퓨터 전원을 켜놓고 부팅이 될 때까지 기다릴 때도 늘 조급하다. 그러나 이렇게 ‘기다림’에 익숙하지 않은 나에게 ‘기다림의 미학’을 깨우쳐준 사건이 있었다.

종신서약을 하기 전에 누구나 거쳐야하는 긴 피정 때의 일이다. 무려 ‘40일’이라는 시간을 철저한 침묵 속에서 기도해야 하는 피정이었다. 처음 며칠간은 지도자의 배려 아래 푹 쉴 수 있었다. 그동안 바삐 지내느라 지친 몸을 달랠 겸 실컷 잠을 잤다. 낮에도, 밤에도 잠과 친구가 돼 놀았다.
그러나 그것도 며칠뿐, 너무 잠을 잤더니 이제는 더 이상 잠을 이룰 수 없게 됐다. 결국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하루에 9시간을 성체 앞에 앉아 기도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열흘이 지나도록 기도만 했다.

하지만 이렇게 열심히 기도하는 내게 아무런 영적 위로나 체험은 없었다.

슬슬 ‘화’가 나기 시작했다. 내가 시간이 남아돌아 피정에 온 것도 아니고, 적지 않은 경비를 들여 피정에 왔는데 이 정도 시간을 들여 기도했다면, 내게 조금이라도 영적 체험은 있어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아무것도 없었다. 억울했다. 30일째 이렇게 앉아 기도했는데 하느님은 너무하셨다.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피정의 집을 떠나고 싶었다. 피정을 동반해주시는 분께 면담을 통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도저히 더는 하느님을 기다릴 수 없다며 내 인내심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냈다.

피정을 동반해주시는 분은 내게 자상하게 타일러 주셨다.

“하느님은 수사님을 지금 이 순간까지 ‘기다리셨습니다’. 잃어버린 아들이 돌아올 날을 ‘기다리면서’ 늘 동구 밖까지 나와 ‘기다리신’ 아버지께서는 똑같은 마음으로 수사님을 ‘기다려왔습니다’. 그런데 수사님은 이제 겨우 30일간 그분을 ‘기다렸을 뿐인데’ 당장 빨리 만나주시지 않는다고 화를 내는군요. 그분이 우리를 먼저 ‘기다렸기에’ 우리도 그분을 ‘기다려야하는’ 것 아닐까요?”

나는 부끄러웠다. 오랫동안 나를 기다리신 그분 앞에 조급한 마음으로 내가 원하는 때에 내가 원하는 방법으로 ‘이것 내 놓으라, 저것 내 놓으라’ 윽박질렀던 내 모습이 부끄럽기 짝이 없었다.

준비되지 않은 내 모습은 바라보지 않고 준비될 때까지 기다리셨던 그분의 여유를 못마땅하게 생각했으니 말이다. 이후 나는 조급한 마음을 내려놓게 됐다. 내일 저를 만나주셔도 좋고, 내년에 저를 만나주셔도 좋고 언제든지 그분께서 원하시는 때에, 내가 그분을 만날 준비가 됐을 바로 그때 만나주실 것을 청하며 느긋한 마음으로 기다렸다.

모든 것을 그분께 맡겨드렸다. 마음의 자세를 바꾸고 나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지고 몸이 편안해졌다. 이제 ‘기다림’은 내게 친숙하다. 내가 시간을 정해놓지 않고 그분의 시간을 기다리니 여유가 있다. 조급한 마음으로 인해 놓쳐버린 것들이 하나씩 보이기 시작하고 내 안에 있는 엄청난 은총의 보화들을 발견하게 됐다.

‘대림’은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시간이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때를 정해놓고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오실 그 때를 기다리는 것이다.
‘때가 찼을 때 모든 것이 이루어지리라’는 마음으로 그분의 때를 기다리며 우리의 시간을 봉헌하는 것이 대림을 보내는 우리의 자세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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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08-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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