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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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특집-낮은 데로 임하소서] (4) 밤골아이네공부방 일일교사 체험

우린 공부방이 재미있을 뿐이고, 사랑주는 이모들이 좋을 뿐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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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가 밤골아이네 공부방에서 학생의 공부를 도와주고 있다.
백영민 기자 heelen@pbc.co.kr
 


서울 하월곡동에 있는 밤골아이네 공부방을 다녀왔다. 정확히는 `밤골아이네 공부방 지역아동센터`이다. 2005년 공부방이 사회복지시설로 법제화되면서 공부방은 `지역아동센터`로 이름이 바뀌었다. 밤골아이네는 `공부방`이라는 말이 지닌 따스함을 포기할 수 없어 지역아동센터 앞에 공부방을 그대로 뒀다.

 공부방. 글자 그대로 공부하는 방이다. 기초생활수급 대상자ㆍ저소득층 맞벌이ㆍ한 부모ㆍ조부모 등 대부분 영세민 가정의 초등학생 60여 명과 중학생 20여 명, 그리고 이들을 가르치는 교사 6명이 밤골아이네 가족이다. 초등학교 저학년(1~3학년)은 학교가 파한 오후 1시쯤 와서 공부하다가 3시쯤 돌아가고, 고학년은 3시쯤 와서 6시에 저녁을 먹고 집으로 간다. 저녁시간은 중학생들 차지다.

 학생들이 전액 무료로 이용하는 공부방 운영비는 매월 1000여 만원이 든다. 200여 만원은 정부 지원을 받지만 나머지는 공부방 자체 조달이다. 대부분 후원에 의지하는 편이다. 1000만원으로 대식구 살림을 꾸리자니 모든 것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박봉이라는 말도 무색한 급여임에도 하루종일 아이들과 씨름하는 교사들이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사명감과 보람이 없으면 못할 것 같다.
 빼놓은 사람들이 있다. 시간이 되는대로 매주 1~2회 공부방을 찾아와 아이들을 가르치는 60여 명의 자원봉사자들이다. 인근 고려대와 동덕여대 학생들이 많다.


서울 지하철 6호선 월곡역에서 내려 밤골아이네를 찾아 걸어가는 길, 여기저기 아파트를 세우는 공사장들이 눈에 들어왔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조성하는 공사 현장이다. 동행한 사진기자가 "예전 저 자리는 모두 낡고 비좁은 집들로 빽빽한 주택가였다"고 귀띔했다. 우중충하기 이를 데 없는 맞은 편 동네와는 완전 딴판인 풍경이다.

 전화로 물어물어 도착한 밤골아이네 공부방. 넓직한 2층 양옥집이다. 예상했던 것보다는 훨씬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설명을 들어보니 공부방을 운영하는 그리스도의 성혈 흠숭 수녀회가 무상으로 임대한 집이란다. 많은 공부방들이 전ㆍ월세를 전전하고 있는 것에 비하면 밤골아이네는 환경이 아주 좋은 편에 속했다.

 전화로 통화했던 김희경 수녀가 반갑게 기자 일행을 맞았다. 수도복을 입지 않는 수도회라는 사전 지식이 없었더라면 크게 실수할 뻔 했다. 옷차림이 여느 평범한 이웃집 아줌마다. 씩씩하고 적극적인 성격까지 그랬다. 아이들은 공부방 교사들을 이모라고 부른다. 엄마 다음으로 살가운 이름이 `이모` 아니던가. 김 수녀는 하늘이모다.

 시계추가 오후 1시를 넘기자 고만고만한 꼬맹이들이 하나둘씩 현관으로 들어섰다. 보이는 이모들한테마다 "안녕하세요" 인사소리가 우렁차다. 두손까지 가지런히 모아 고개 숙이는 어린이도 한둘이 아니다. 이렇게 기특할 수가! 인성교육 차원에서 인사 예절을 강조해온 김 수녀의 노력 덕분이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마당에서는 김장을 하는 봉사자들의 손길이 분주했다. 아들을 이곳에 보낸다는 한 어머니에게 밤골아이네 공부방이 왜 좋은지 물어봤다.
 "어디 가면 자칫 기가 죽고 소극적이기 쉬운 아이들이 여기서는 얼마나 밝고 자신감 있게 지내는지 몰라요. 이모들이 아이들을 사랑으로 감싸주기 때문일 겁니다. 친구들이랑 늘 어울리니까 성격도 참 좋아졌어요."

 명색이 일일교사로 방문했던 터라 학생 몇 명의 공부를 봐주기로 했다. 한 이모가 학습진도가 늦어 나머지 공부를 하고 있는 1학년 선영(이하 가명)이를 데려왔다. 또래에 비해 체구는 작지만 천진난만함이 새하얀 얼굴에 그대로 묻어나는 어린이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또박또박 한 글자씩 눌러쓰는 모습이 얼마나 귀여운지…. 친구들 노는 소리에 정신이 팔려 공부는 뒷전인 듯 했지만 머리를 싸맨 채 시키는대로 따라하는 모습이 천사가 따로 없었다.
 "공부방에서 공부하는 게 재밌니?"
 "재미 있어요. 친구들하고 노는 것도 좋아요."
 남은 문제를 다 푼 선영이는 벌떡 일어나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담임 이모에게 갔다. 공부 다했으니까 집에 가겠다는 것이다. 가는 선영이를 붙잡고 바보 같은 질문을 하나 더 했다. "여기서 어떤 이모가 제일 좋아?"
 불순한 질문 의도를 간파(?)한 선영이는 배시시 웃으며 "도망가야겠다, 도망가야지…" 하더니 순식간에 현관으로 사라졌다. 그래도 "안녕히 계세요." 인사는 빼먹지 않았다.

 5학년 은지의 수학공부를 도와주는 것은 진땀 빼는 일이었다. 요즘 초등학교 5학년 수학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아는 사람은 다 안다. 답안지를 먼저 보지 않고서는 은지를 가르칠 도리가 없다. 다행히 은지는 설명하는 내용을 잘 이해했고, 틀린 문제를 제대로 다 고쳤다.

 3학년 때부터 공부방에 다닌다는 은지는 지난 여름 공부방에서 단체로 1박2일 캠프 갔던 것을 가장 소중한 추억으로 꼽았다. 공부방에서 처음 받아본 성탄 선물도 무척 고마웠고 올해 성탄 선물도 기다려진다고 했다. 제일 좋았던 간식은 라면. 꿈은 화가가 되는 것이다.

 선영이와 은지 외에도 몇명의 공부를 도왔다. 해보지 않은 일들이 다 그렇겠지만, 잠시나마 아이들 공부를 봐주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여기 이모들이 참 힘들겠다 싶었다.

 오후 6시 저녁시간. 각자 먹을 만큼 퍼서 먹으면 될텐데도 일일이 밥과 반찬을 식판에 담아 줬다. 그러지 않으면 먹고 싶은 반찬만 골라 먹기 때문이란다. 귀찮기는 하지만 세심한 배려가 아닐 수 없다. 다 먹고 나면 식판 검사를 했다. 하나도 남김없이 다 먹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저녁밥을 먹고 집으로 떠나는 초등학생들 자리는 중학생들이 채우기 시작했다. 공부방의 저녁은 그렇게 깊어갔다.

 며칠도 아닌 겨우 한나절을 머물면서 아이들의 속사정을 알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그 아이들이 어떤 가정에서, 어떤 환경에서 자라고 있는지는 솔직히 모른다. 큰 아픔을 지닌 채 지내는 아이들도 하나둘이 아닐 거라 짐작만할 뿐이다. 기자가 보기에는 다들 꾸밈없이 예쁘고 착하기만 했다.
 3학년 어린이에게 성탄절이 무슨 날인지 아냐고 물었더니 대답이 걸작이다. "빨간 날요." 공휴일이라는 뜻! 웃고 말았다.

 `쉬는 날 하루를 주신 분으로만 기억되는 예수님. 이 아이들이 커서 어른이 되더라도 지금처럼 예쁘고 착한 마음 잊지 않도록 도와주세요. 혹시 있을지 모를 아이들의 상처, 모두 거둬 주세요. 그리고 예수님을 하루 휴식 뿐만 아니라 1년 365일 평화를 주시는 분임을 깨닫도록 이끌어 주세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 예수 그리스도께 이 기도를 성탄 선물로 청했다. 꼭 들어주실 거라 확신한다.



가톨릭평화신문  2008-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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