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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에세이] 참다운 겸손과 사랑 / 손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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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전남 고흥에 위치한 소록도라는 섬으로 피정을 하러 갔습니다. 소록도는 모두가 아는 것처럼 일제강점기 나환자를 격리하기 위한 방침으로 한센인들을 강제로 수용했던 곳입니다.

소록도 곳곳에는 검시실, 시체 해부대, 감금실, 수탄장 등 죄인이 아니면서도 죄인처럼 갇혀 살아야 했던 그들의 아픔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곳들이 있습니다. 그들을 눈으로 직접 본 것도 아닌데, 장소만 보아도 그들의 아픔을 절절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마 40년 동안 이들을 보살펴 준 두 간호사도 그 당시 그들의 아픔을 차마 그냥 지나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오스트리아 출신 마리안느와 마가렛의 이야기는 많은 사람이 알고 있듯이 반세기 전 가방 하나 들고 소록도에 들어와 43년간 한센병 환자들을 보살핀 간호사였습니다.

그녀들의 헌신도 헌신이지만 그녀들의 마지막 인사와 겸손을 보며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2005년 그녀들은 집마다 편지 한 통을 남긴 채 돌연 귀국해 버립니다.

늙고 병든 몸으로 더 봉사할 수 없다는 것이 하나의 이유였고 또 하나는 그녀들이 점점 유명해져 유명인사가 될까 두려웠다고 합니다.

저로서는 생각도 할 수 없는 이유였습니다. 가장 낮은 자의 모습으로 가장 낮은 자리에서 빈손으로 살다가 빈손으로 홀연히 가버린 그 모습이 주님의 모습과도 너무 닮아 있었습니다. 이들은 마태오복음 6장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씀을 평생 실천하며 순명과 겸손을 중요시했다고 합니다.

그녀들의 마지막은 절대 화려하지 않았습니다. 요양원에서 늙고 병든 모습으로 치매로 점점 잊혀져가는 기억 속에도 마가렛이 기억하는 세 가지는 소록도와 한국말 그리고 행복했던 그 시절이라고 합니다. 그 얘기를 듣는 순간 정말 울컥했습니다. 같이 있던 많은 사람이 감동하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무엇이 그들을 그 먼 곳에서 아무도 찾지 않는 이곳으로 오게 한 것일까요?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 없이는 절대 이룰 수 없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소록도본당의 금전적 지원도 마다하며 그녀들이 바란 것은 아마도 병들고 소외된 아픈 이들을 그저 ‘사람’으로 바라봐주길 원하지 않았을까요?

너무도 당연하고 간단하고 어렵지 않은 상식적인 일이지만 우리가 행하지 않고 있는 그것. 그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손효진
(비아·가톨릭대 성빈센트병원 병리과)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19-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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