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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구 수도회 영성을 찾아서]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수녀회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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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캄 성 십자가 수녀원 수도자들이 한국에 진출하게 된 것은 간도(間島)지역을 사목 관할 구역으로 설정된 연길지목구장 브레허(Theodor Breher) 신부가 1930년 수녀 파견을 요청하면서다.

당시 수녀원 총원장 아델하이드 슈비터 수녀는 선교 수녀회가 아니었음에도 이를 수락하고 1931년 6월 14일 연길지목구와 계약을 체결했다. 파견 계약서에는 ‘선교지에서의 사도적 활동이 중요하지만, 베네딕도회 생활양식 특징을 유지하며 사는 데 있어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고 규정했다. 이로써 그해 9월 14일 베로니카 라우르 수녀 등 지원자 6명은 한국으로 출발하게 된다.

약 2개월이 걸려 11월 1일 제물포를 통해 입국한 이들은 11월 6일 연길에 도착했다. 11월 9일에는 ‘예수 성심’을 주보로 연길 수도원 옆에 4층 규모의 수녀원 축성식을 거행했다. 브레허 신부는 이에 앞서 4명의 한국인 지원자들을 받아들여 11월 11일 입회하도록 했다. 수녀원은 처음에 ‘캄 하일릭크로이츠 연길 수녀원’ 또는 ‘연길 성 십자가 수녀원’ 등으로 불렸다.

이후 캄 성 십자가 수녀원 수도자들은 연길수도원 수도자들과 함께 중국 복음화를 위해 일제 말기에 자행됐던 종교 박해에도 불구하고 시약소 개설 등 여러 사도적 활동을 펼쳤다.

1945년까지 7개 본당에 분원을 설립하고 18명 선교 수녀와 17명 한국인 수녀가 활동하는 등 활발하게 자리를 잡아가던 수녀회는 해방이 되며 중국 공산당이 들어서자 여러 차례 핍박과 수난을 받았다.

1946년 결국 수녀원은 해체되고 스위스 수녀들은 본국으로 강제 추방되는 한편 한국 수녀들은 38선을 넘어 남하했다.

월남한 수녀들은 경기도 소사에 본원 터를 마련하고 수도 공동체를 조성하려 했으나 한국전쟁으로 다시 피난길에 올랐다. 부산으로 내려가 처음 부평동에서 생활하던 회원들은 1951년 5월 초량동에 터전을 마련하고 성 분도 자선 병원을 개원했다. 이곳은 연길에서 나와 온갖 어려움 속에 남한에서 수녀회가 다시 수도 생활을 시작한 새 터전이 된다.

1953년 스위스에서 다시 한국으로 수녀들이 파견돼 왔고 공동체는 수도 공동체 모습을 가다듬게 된다. 계속해서 회원 수가 증가하며 다양한 활동 속에 성장을 거듭한 수녀회는 1972년 대리구 승격에 이어 1981년 교황청 설립 자립 수녀회 인가를 받았다.

수녀회는 1990년 캐나다 몬트리올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1991년 미국 볼티모어와 중국 연길 및 필리핀에 회원을 보내는 등 해외 지원 설립을 활성화했다. 특히 연길 진출은 수녀원의 첫 자리에 회원을 파견했다는 면에서 의미가 부각됐다. 2011년 수녀회 설립 80주년을 기념하며 2010년에는 회원 3명이 브라질 아마존강 인근 오지를 향해 떠났다.

2021년 현재 아시아 유럽 남미 등지의 해외선교를 비롯한 국내 13개 교구의 62개 본당과 기관, 병원, 유아교육, 사회복지 등 현장에서 영성을 구현하는 수녀회는 ‘어떤 특정한 목적만을 추구하지 않고 능력이 닿는 한 복음 선포를 위한 여러 가지 사명에 열려있는’(회헌 32) 자세를 지향한다.


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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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1-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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