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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에세이] 아이들은 나를 변화시킨다 / 장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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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주일학교 교사로 아이들과 봉사활동을 시작할 때는 이를 통해서 하느님 사랑을 나누는 실천교리를 가르치고자 하였다. 장애아거주시설에 가서 청소도 하고 말벗도 하며 일손을 돕는 봉사활동을 하고 집으로 돌아올 때면 아이들이나 나나 파김치가 되어 오기 일쑤였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들 입에서 시설에 계신 어르신들을 위해 밴드공연을 하며 함께 즐기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다는 의견이 나왔다. 아이들의 마음이 너무 예뻤다. 우리는 기타, 피아노, 드럼, 보컬 등 학생들의 재능기부를 받아 시설에 계신 어르신들이 좋아할 트로트를 중심으로 밴드공연을 기획하게 되었다.

밴드공연이 있던 날, 많은 프로그램을 준비한 노력을 뒤로한 채, 아이들은 시설 어른분들과 손을 잡고 원을 그리며 100바퀴는 넘게 돌았으며 ‘남행열차’를 20번 넘게 메들리로 연주했다. 준비한 곡을 다 들려드리지 못한 아쉬움이 컸을 텐데 내색하지 않는 아이들이 대견하기만 했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나는 “오늘 많이 힘들었지? 준비한 거 다 못해서 많이 속상했을 거야”라며 위로의 말을 건넸다. 아이들은 나의 위로가 무색하게 “재밌었어요!”라며 각기 다른 작은 예수님의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아이들 얼굴에는 남을 위해 오롯이 나눔을 준 행복한 예수님의 얼굴, 어르신들의 손에서 묻어나는 사랑의 온기를 가슴에 담은 예수님의 얼굴이, 두려움 속에서 “하길 잘했다”라며 뿌듯해 하는 어린 예수님의 얼굴이 버스 안을 가득 채웠다.

아이들과 봉사활동을 하면서 언제나 나의 마음속에는 나눔의 방법을 가르치고, 사랑을 느낄 수 있도록 가르치고, 실천하는 방법을 가르친다는 생각이 있었다. 나의 오만이었다. 주님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도구로 나를 쓰신 것이 아니라, 스스로 깨닫게 하는 기회를 만들어 주는 도구로 부르셨는데 오만으로 가득한 나는 이제야 아이들을 통해서 마음의 눈을 뜬 것이다.

아이들은 각자의 생활환경에 따라 가시덤불에서 자랄 수도, 길가에서 자랄 수도, 볕이 잘 드는 밭에서 자랄 수도 있다. 나는 주님이 고용한 교사로서, 뿌려진 씨를 옮겨 심을 수 있는 능력은 없다. 다만 볕이 드는 밭의 씨가 잘 자라는지 관심을, 가시덤불 속의 씨가 볕과 바람을 받을 수 있도록 따스한 마음을, 길가의 씨가 메마르지 않도록 용기의 물을 줄 수 있을 뿐이다. 어느 곳에서 자라든 다 주님의 자녀이고 주님이 나에게 주신 사랑들이다.

스스로 도전하여 계획하고 성취를 맛보는 과정 안에서 그리스도적 가치관을 실천 할 수 있도록 아이들 마음을 뜨겁게 해주는 지도자, 열정을 다해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의 가치가 얼마나 행복한지를 보여주는 선구자, 가르치는 교사가 아니라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는 친구가 되기로 다짐했다. 그날의 깨달음은 나를 다시 태어나게 했다.


장현주(마리아·제1대리구 영통성령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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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1-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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