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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에세이] 야훼 이레 (창세 22,14) / 전용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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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받은 지 7년 만에 첫 고백을 하고, 그 다음 실천한 일은 매일 미사에 참례하는 것이었다. 매일 성당에 나가다 보니 일상의 시간이 달라졌고, 알지 못했던 또 다른 나의 출현은 마치 이상(李箱)의 시(詩) ‘거울’처럼 나를 분열시켰다. 이건 또 뭘까? 그렇게 한 달여간 매일미사에 참례하며 알게 된 사실은 ‘내 안에 내가 너무 많은’ 가시나무 새라는 것이었다. 아! 내가 누군지도 모르고 살았구나! 깊은 통회로 저절로 무릎을 꿇었다. 돌보지 못했던 내게, 가족에게.

미사가 끝나도 제일 늦게 성당에서 나왔다. 어느 날 제대를 정리하시던 수녀님으로부터 전례 봉사를 권유받았다. 알아야 할 것이 많다고 생각하던 차에 감사했다. 새벽 미사를 준비하며 나는 다시 깨어나는 것 같았고 결혼 후 처음으로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을 갖게 됐다. 독서 읽는 방법부터 해설, 마이크 사용법까지, 전례 동작과 도구들은 내가 수집한 상본 속 그림들을 실제로 재현하고 있었다. 미사는 봉헌하는 이들만의 정원의 샘이었고 신부님 기도 하나하나에 ‘마땅하고 옳은 일입니다’라는 응답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교회 가르침의 보편성에 나는 설득되었고 신앙의 깊이와 상관없이 가톨릭 서점을 수시로 드나들었다. 신앙을 책으로라도 빨리 배우고 싶었던 때였던 것 같다. 그러나 아이들 돌봄에 있어서는 여전히 세상과 경쟁했다. 특히 큰 아이와는 하루하루가 전투였다. 전 과목 시험 모두 백 점을 맞지 않으면 아이는 학교 운동장에 서 있었다. “천국은 여기서부터 사는 거예요”라는 이웃 신자의 말을 듣게 됐고, 그때 내 시간은 멈추어 섰다. 침대가 무덤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한편 지옥 현실을 산다는 말에 긍정했다. 생중계되고 있던 내 삶의 행태를 다른 사람 입을 통해 듣는다는 것이 충격이었지만 분노는 잠시, ‘이젠 그렇게 살지 않아도 돼요’라는 위로의 말로 들렸다. 다른 말도 자기 말로 알아듣게 된 나는 혼자 말했다.
“새 포도주에 취했군.”(사도 2,13).

그러나 여전히 방법은 몰랐다. 초기 교회 시대로 진입하고 있던 나는 익숙하지 않은 모든 것이 편치 않고 평온하지 못했다. 그런 가운데 매일 미사 드리며 듣던 ‘야훼 이레’(Yahweh-jireh)는 내게 가장 필요했던 그분의 음성이었다. 성경 말씀은 그렇게 내 연인이 되었다. 내 안에 또 다른 나를 살게 하는 파스카 축제가 시작되었고, 반전의 시간을 체험하면서도 종종 의심했다. 아직 광야를 지나지 않은 나는 하느님과 씨름하는 야곱이 되어갔다. 하느님과 겨뤄 이스라엘이 되어야 했다. ‘모든 것의 주인은 하느님’이라 하니 온 힘을 기울여 그분을 알아야 했다.

하상신학원 입학은 필연이었다. 가장 긴 ‘카이로스’(Kairos) 시간을 경험했고 언제나 영원한 현재이다. 지금도 그때를 요약하면 이렇다.
“나는 비천하게 살 줄도 알고 풍족하게 살 줄도 압니다.”(필리 4,12). 아멘.
전용혜 로사
제2대리구 서판교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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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2-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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