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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알 하나] 여러분은 아이들과 놀아줍니까? 놀아주는 방법을 아나요? / 정희성 베드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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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아이들과 놀아줍니까? 아이들과 놀아주는 방법을 아나요?” 지난해 말 로마에서 있었던 교황님과 유학 신부, 신학생들과의 만남 자리에서 한 사제의 질문에 답을 하며 나왔던 교황님의 또 다른 질문입니다.

대화 중에 한 사제가 손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교황님이 사용하는, 신자들에게 편하게 다가가고 신자들이 교황님을 받아들일 수 있는 ‘몸짓의 언어’를 배울 수 있냐고 질문했습니다.

교황님은 그에 대해 그 언어는 인생이 가르쳐줄 것이라고 하면서, 무엇보다도 사제들이 신자들에게 먼저 다가가고 표현해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곧 사제에게는 표현이 전부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이들과 놀아주는 방법을 아느냐고 물으며, 만약 사제가 행동으로 인간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그 사제의 생각은 굳어질 것이고, 강론할 때는 아무도 알아듣지 못하는 추상적인 말을 하게 될 것이라는 말까지 덧붙였습니다.

사제품을 받은 후, 파견 가는 곳에서 언제나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교회의 이름으로 자신들이 살고 있는 곳으로 온 저를 언제나 따뜻하게 맞이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함께 할 수 있도록 옆자리를 내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소임지에서 사람들과 잘 어울리기까지는 언제나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당연히 필요한 시간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법을 잘 배우지 못했기에 더욱 그랬던 것 같습니다. 잘 어울리지 못했기에, 때로 다른 이들의 말을 왜곡해서 듣기도 했고, 제가 사람들에게 하고자 했던 말의 의미가 올바로 전달되지 않는다고 느껴져 답답하기도 했습니다.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법을 잘 배웠다면 조금은 더 편하게 이해되고 받아들일 수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교황님 말씀처럼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기에 사람들 이야기를 듣지 못했고, 사람들 이야기를 듣지 못했기에 제가 준비한 강론은 때론 현실과 거리가 멀게 느껴지는 추상적인 것이 되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삶 속으로 직접 오셔서 구체적인 이야기로 하느님을 말씀해 주셨는데, 정작 그 하느님 말씀을 전하는 제 강론은 그렇지 못했던 것입니다.

고마운 것은, 신자들이 그런 부족한 저를 포기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제가 사제관 방 안에 틀어박혀 있지 않고 용기를 가지고 돌아다닐 수 있었던 것은 신자들의 환대 덕분이었습니다. 늘 다가와 주었고, 특별히 아이들이 그랬습니다. 먼저 다가와 자신의 이름을 알려주고, 집무실을 자신의 방처럼 편하게 생각해 놀고 이용했던 아이들까지…. 그 친구들은 아이들에게 서툰 저를 잘 받아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덕분에 시간이 걸렸지만, 어울리는 법을 배워 나갈 수 있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아주 부족하지만, 그래도 이제는 사람들과의 옆자리에서 조금은 더 편안하게 있게 되었습니다. 가르침을 준 모든 선생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다른 신부님들을 가르쳐 주시는 것에 대해 포기하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정희성 베드로 신부
수원가톨릭대학교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23-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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