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뜸북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 뻐꾹뻐꾹 뻐꾹새 숲에서 울 제~.’
7살이었는지 8살 때였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외할아버지 환갑잔치 때 사람들 앞에서 동요 ‘오빠 생각’을 불렀던 기억이 난다. 어머니를 비롯한 친척들 모두 “너무 잘 부른다”고 칭찬해주셨던 그 시절부터, 나는 노래하는 걸 무척 좋아했다.
그렇게 노래를 좋아해 군 제대 후에는 청년성가대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그때 4성부가 그려진 성가 악보를 보고 깜짝 놀랐다. 4성부 악보를 보고 자신의 파트를 불러보는 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아니, 어떻게 악보를 보고 노래를 부를 수 있지?’
그때 성가대를 따라가기 위해 열 일 제쳐두고 악보 보는 연습을 했고, 잘 안 될 땐 음정을 듣고 그냥 외워버리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4성부 악보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점점 악보를 보고 음정을 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뒤부터는 악보 보는 것이 너무 즐거워졌고, 미사 중 아름다운 성가를 함께 부를 땐 가슴이 벅차올랐다. 성가를 ‘제2의 기도’라고 하지 않았던가. 찬양하며 느낀 감동의 순간들은 차곡차곡 마음속에 쌓여갔다.
성가대 활동을 하면 할수록 목소리는 다듬어져 갔고, 때로는 성악하는 사람처럼 부르기도 했다. 그래서 주변에서 “타고난 목소리이니 성악을 해보는 것이 어떠냐”는 제안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내 목소리가 그렇게 좋은가? 에이, 아니야. 이 나이에 무슨 성악을???’하며 웃어 넘겼었다. 그때 회사를 다니고 있었는데, 어느 날 문득 ‘성악을 한번 해보면 어떨까? 주님을 위해 이 목소리를 써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 ‘나는 이미 결혼도 했고, 서른살인데…’라는 고민도 들었다.
생각과 고민이 왔다갔다 하던 때, 성가대에서 만나 내가 노래하는 모습을 오래 지켜본 아내의 권유와 설득으로 새로운 도전에 용기를 냈다. 이런 갑작스러운 일들은 일사천리로 진행됐고, 서른두 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성악과에 편입했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졸업과 동시에 시립합창단에 합격해 입단하게 됐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때의 모든 과정은 나의 능력이나 의지만으로는 불가능했던 시간이었다.
떼제 성가 중 ‘항상 주님께’(In the Load)라는 성가를 좋아하는데, 딸아이 자장가로도 많이 불러주곤 한다. 이 노래를 부르면 주님의 모든 섭리와 이끄심에 대한 감사를 마음속 깊이 느낄 수가 있다. 지금 나는 성악가로서 본당 솔리스트와 개인적인 연주, 성가대 지휘자 등으로 활동하며 주님을 찬양하고 있다. 노래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다가 나의 목소리로 주님을 찬양하는 삶으로 이끌어 주신 주님께 깊은 감사와 찬양을 드린다.
‘항상 주님께 감사하며 항상 기뻐하라/ 두려움 없이 기다리며 오시는 주님 찬양하라/ 오시는 주님 찬양하라~.’
안장혁 필로메노
제2대리구 서판교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