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설날, 부모님을 만나 뵈었을 때의 일이다. 점심을 드시면서 아버지는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무슨 일이든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만 하지 마라. 내 뜻대로 하지 말고 상대방을 존중해 주어라.”
나는 그 말을 듣고 기분이 좋지 않았다. 수긍하기는커녕 그 말이 거슬리기까지 했다. 그 말이 잘못되어서가 아니라, 내 마음 안에 계신 아버지는 자기 멋대로 사신 분이라는 생각이 있어서 그 말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아버지를 떠올리면, 유독 한 사건의 장면이 먼저 떠오른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아버지께 벌을 받았던 기억이다. 나는 집에서 굴러다니는 500원짜리 동전을 아무 생각 없이 주워서 군것질을 했었다. 아버지는 그것을 내가 썼다는 것을 아시고, 크게 화를 내시며 벌을 주셨다. 그때 아버지는 내게 얼차려를 주시고, 뉴스를 보시다가 잠이 드셨다. 나는 40분 정도 벌을 서면서 울고 있었고 억울한 마음이 들며 분노가 치밀었다. 그러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아버지는 어떻게 어린 아들에게 벌을 주고, 저렇게 잠을 청할 수가 있나? 나는 이 정도로 벌을 섰으면 됐다. 아버지는 너무 나쁘다.’
성 빈센트 병원에서 임상사목교육(CPE)을 받으면서, 어린 시절의 나와 아버지를 다시 만나는 시간을 가졌다. 어린 시절 가장 인상 깊었던 몇 장면을 떠올리며 지금의 내가 어린 시절의 나를 만나는 것이었다.
현재의 내가 어린 시절 나에게 하나하나 질문을 던졌다. “아빠가 벌을 세웠을 때 마음이 어땠니?”, “아빠가 그때 아무런 말도 건네지 않았다고 했는데, 그때 어떤 말을 해주었으면 좋았을까?”
현재의 나는 과거의 나에게 여러 감정(화, 슬픔 등)들을 하나하나 물어보았고, 과거의 내가 그때 감정들과 사건들을 다르게 해석하고 반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나는 몇 가지를 다르게 해석할 수 있었다. 내 기억 속의 아버지는 엄격하고 무서운 분이었다.
그러나 교육 과정을 통해 만난 아버지는 그렇게 엄격하고 무서운 분이 아니었다. 한 번의 얼차려를 주신 것을 제외하면 내게 물리적인 폭력을 행사하지도 않으셨고 무언가를 내게 강압적으로 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적도 별로 없었다. 단지 힘들 때 힘들다고 말할 줄 모르시고, 아플 때 아픔을 표현함에 있어 서툴고 익숙하지 못하신 분이었다.
과거의 사건들은 성장 과정을 거치고 돌아봤을 때 다르게 해석하고 반응할 수 있다. 지금까지의 나는 현재의 아버지가 아니라, 과거의 잘못된 기억의 아버지와 만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내게 아버지와의 만남은 쉽지 않다. 그러나 과거의 아버지가 나를 돌봐주셨다면, 이제는 내가 나이든 아버지를 돌봐드려야 한다는 것을 느낀다. 과거의 아버지는 내게 자주 표현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그 아버지의 마음을 잘 읽어 드리고 싶다.
이용수 십자가의 요한 신부
병원사목위원회 부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