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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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알 하나] “라떼는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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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어린이 미사를 봉헌하고 마당에 나와 보니 한 무리의 아이들이 게임을 하고 있었습니다. 만화 캐릭터와 능력치 등이 적힌 카드를 가지고 서로 대결하는 일종의 카드 게임인데, 저도 어린 시절에 비슷한 놀이를 했던 추억이 떠올라 반가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다가가 말했지요. “이야~ 카드놀이 하는구나. 신부님도 어렸을 때 참 재미있게 했었는데.” 그러자 한 아이가 귀찮다는 듯 곧장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신부님, 라떼는 카페 가서 시키세요.”


아시는 바와 같이 한때 “라떼는 말이야”라는 말이 유행했던 적이 있습니다. “나 때는 말이야”로 시작해서 자신이 겪었던 일들을 지루하게 늘어놓다가, 결국 우리 시대에는 감히 하지 못했던 것들을 너희는 왜 하느냐고 훈계하는 기성세대를 비꼬는 풍자적 표현입니다.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을 강요하는 어른을 가리키는 속어인 ‘꼰대’도 이와 비슷한 용도로 사용되고 있지요. 반대로 흔히 언급되는 ‘MZ’는 특정 젊은 세대를 뜻하는 신조어로 소개됐지만, 요즘에는 이해할 수 없는 젊은이들의 행태를 꼬집는 부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어떤 책 제목처럼 “90년대 생이 온다”고 떠들썩했던 시절이 있었지만, 이제는 그 90년대 생들도 더 어린 세대를 보며 격세지감을 느끼는 시대가 됐습니다. 하긴, 수천 년 전에도 “요즘 애들은 버릇이 없어”라고 말했다는 것을 보면 세대 간 갈등은 요즘 시대만의 문제는 아닌 듯합니다. 모든 문화는 예외 없이 갈등과 변화를 겪어 왔고 이를 통해 때로는 악습들이 사라지는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으니, 이 또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흐름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한 가지 우려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이해와 소통 없는 무조건적 거부와 혐오입니다. 실제로 요즘 자주 접하는 표현 중 하나가 ‘OO충’이라는 말들인데요. 특정 집단 뒤에 ‘벌레’라는 뜻의 ‘충(蟲)’을 붙여 싸잡아 비하하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이것이 비단 일부의 표현으로 끝나지 않고, 세대, 성별, 지역, 인종, 종교 등 거의 모든 영역에서 점점 거대해지는 혐오의 문화로 드러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모두 불완전한 인간입니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그 안에 존재하는 부정적인 요소들이 모두 사라질 수는 없기에, 여기에 속한 모든 존재를 혐오할 이유 또한 될 수 없습니다. 물론 인간이란 감정의 동물이기에 때때로 무언가를 좋아할 수도 있고 싫어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 좋아하지 않는 무엇을 꼭 싫어함의 영역에 두어야만 할까요? 좋아하지도 않고 싫어하지도 않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그 수많은 영역과 존재는 당장 좋음과 싫음의 두 영역 중 하나로만 구분 짓도록 하는 흐름 안에서 보이지 않는 악의 작용을 느끼곤 합니다.


“그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요한 17,22) 악(惡)은 갈라지게 하지만 선(善)은 모아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잃은 양들을 하나로 모아들이기 위해 오셨고, 이를 위해 죽고 죽이는 싸움이 아니라 목숨을 바치는 사랑을 선택하셨습니다. 혼자서는 절대로 살아갈 수 없는 이 세상에서 이제는 혐오가 아닌 사랑의 씨앗, 자기비허(自己脾虛)의 거름이 뿌려지기를 기도해봅니다.
 



글_김영철 요한 사도 신부(수원교구 장애인사목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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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4-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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