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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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친화적 성당 이야기] <5> 어른들의 착한 불편

"성당 마당에서라도 마음껏 뛰어놀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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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악재본당 어린이들이 성당 안 작은 마당에서 공을 차고 줄넘기를 하며 즐겁게 놀고 있다.
 
 
"신자 여러분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토요일에는 가급적 차를 가져오지 마십시오. 마당에 차가 가득 차면 아이들이 뛰어놀 자리가 없습니다."

 무악재성당은 작은 성당이다. 차량이 대여섯 대 정도만 들어서도 꽉 차는 마당을 2층짜리 성전 건물과 사제관이 빙 둘러싸고 있다. 어른 걸음으로 스무 걸음도 채 안 되는 좁은 마당에서 소년들이 왁왁 소리를 질러가며 공을 차는 모습을 토요일과 주일 오후면 어김없이 볼 수 있다. 당연히 뻥뻥 공차는 소리와 성당 벽에 공 부딪히는 소리로 시끄럽기 이를 데가 없다.

 조립식 건물인 성당 외벽은 공 자국으로 울퉁불퉁해졌고, 2층으로 올라가는 외부 계단 난간은 얼마 전에 수리했는데도 또 부서졌다. 1층에 있는 성물방과 카페의 커다란 유리벽은 아예 공사를 시작할 때 강화유리로 만들었다. 안 그래도 바쁜 사무장은 부서진 기물에 대한 대책을 세우느라 업무가 더 분주해졌다.

 아이들의 공놀이가 이 정도로 과격해진 것은 분명 문제다. 그러나 "얘들아 좀 살살 해라"하며 타이르는 신자들은 있어도 아이들을 혼내거나 내쫓는 어른은 없다. "아이들이 마음껏 공을 차게 놔두십시오. 부서진 것들은 보수하면 됩니다." 이것이 본당 신부의 단호한 입장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초등부 교리교사에게 들은 일이다. 초등학교 3학년 남학생들이 너무 산만하고 시끄럽게 굴기에 교리실 밖으로 데리고 나가서 야단을 좀 쳤단다. 그런데 야단맞던 아이들이 "선생님, 저희 잠깐 텀블링 좀 해도 돼요?"하고 물었다. 교사가 그 모습에 화는 안 나고 귀엽기도 하고 우습기도 해서 그러라고 했더니, 성당 마당에서 5분 동안 신나게 구르고 뛰고 공중제비를 돌고 나서는 "하아, 이제 좀 살 것 같다!"고 하더란다.

 요즘 아이들이 섭취하는 음식은 영양가가 높은 고단백질이다. 그러나 쌓인 에너지를 발산할 공간은 없다. 그것을 발산하지 못하니 병이 되고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다. 쌓인 것이 많지만 풀지 못하는 것은 청소년도 마찬가지이다.

 청소년부 교리교사들이 `탈출기`를 가르친다고 아이들을 앉혀놓고 애니메이션 `이집트 왕자`를 보여 주고 구약성경을 설명했단다. 얌전한 애들이면 몰라도 산만한 청소년들이 집중할 리 없었다. 하도 요리조리 몸을 배배 꼬고 장난을 치기에 교사가 집중시킬 요량으로 "이집트 사람들이 이스라엘 민족을 억압했던 것처럼 지금 너희를 억압하는 것들이 뭐가 있니? 한 번 적어 보자"고 말했다. 아이들이 의외로 조용해지며 열심히 적더란다. 돌아가면서 무엇을 적었나 발표했더니 중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대부분이 `공부`였다.

 "절 억압하는 거요? 미래요. 저는 별로 하고 싶은 게 없어요."
 "저는 그림을 그리는 게 꿈인데, 지금은 그럴 수 없잖아요. 내신점수도 올려야 하고 수능시험도 준비해야 하고, 빨리 마음대로 그림 좀 그리고 싶어요."

 아이들의 장난스러운 겉모습만으로는 알 수 없었던 고민이다. 아직 어린 나이에 버티기 어려운 압박감이 이들을 짓누르고 있지만, 그것을 발산하고 나눌 수 있는 자리는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것을 해결해 주지 못하더라도 이야기할 수 있게 하고 서로 위로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 주는 것이 어른들 몫 아닐까.

 "얘들아, 뛰고 달리고 너희가 하고 싶은 것은 마음대로 해라. 그러나 하느님을 사랑한다면 죄만 짓지 마라."

 필립보 네리 성인의 말이다. 조금 시끄러우면 어떤가. 조금 부서진다고 뭐 그리 대수겠는가. 이것을 통해 그들이 시기적인 어둠과 내면의 어려움을 성당에서 풀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어른들이 필립보 네리 성인과 같은 고운 시선으로 그들을 기다려 주고 이해해주면 좋겠다.

 요즘 무악재본당 신자들은 어린이 미사와 젊은이 미사 전에 자가용을 가져오지 않는다. 작은 성당 마당을 오롯이 아이들 몫으로 내주기 위해서이다. 착한 불편을 선택한 신자들의 마음에 감사할 뿐이다. 작은이들에 대한 관용과 기다림을 아는 신자들이 있어 참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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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2-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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