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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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친화적 본당 이야기] <8> 두윳빛깔 신부님

소홀할 수 있는 아이들 인성교육, 교회의 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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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악재본당 어린이들이 "음식을 남기지 않으면 맛있는 간식을 사 주겠다"는 필자의 약속에 신이 나서 설거지를 하고 있다.
 
 
  "간식을 왜 이렇게 많이 남겼니? 어머니들이 정성껏 준비하신 것들이잖니."
 "맛없어요! 먹기 싫어요! 그만 먹을래요."
 먹을 것이 풍부한 세상이라 그런지 요즘 어린이들은 음식에 대한 소중함을 잘 모르는 것 같다. 무악재본당 초등부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음식을 준비한 분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갖기는커녕 맛이 없다며 조금 먹다 버릴 때가 태반이다. 본당 신부로서 가장 안타까운 점은 성당에서 봉사하는 어른들이 이를 큰 문제로 여기지 않는 것이었다. 아이들에게 잘해주고 싶은 마음으로 봉사하는 건 참으로 아름답고 숭고한 마음이지만, 때로는 훈육이 필요할 때도 있다.

 #간식 남기는 버릇을 고치려면

 이런 경우 방법은 간단하다. 아이들을 굶기는 것이었다. 일단 자모회 어머니들과 내 생각을 공유했다. 모든 일이 그렇듯 이번에도 모두의 생각을 완전히 바꾸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걸렸다. 이제까지 해왔던 방식에 익숙한 몇몇 신자들은 이의를 제기하기도 했다. 어쨌든 어머니들을 설득하고 아이들이 모인 자리에서 말했다.

 "가만히 보니까 여러분은 간식을 너무 많이 남겨요. 그리고 간식을 준비하는 어른들에게 감사할 줄도 모르는 것 같아요. 그래서 신부님과 어머니들은 여러분에게 간식을 주지 않기로 결정했어요."

 이런 식으로 나가자 아이들 태도가 조금 달라지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다시 간식을 주자 `도돌이표`였다. 그럴 때마다 간식을 끊었다. 몇 주 또는 몇 달 동안 아무것도 안 먹이기도 했다. 이런 과정 속에서 가장 많이 변한 것은 바로 자모회 어머니들이었다. 단순히 간식을 준비하는 것뿐만 아니라 아이들을 교육하는 것 역시 자신들 몫임을 이해한 것이다.

 교회 안에서 아이들을 위해 봉사하는 분들이 종종 놓치는 부분이 있다. 사랑
과 보살핌만이 자신들 몫이고 자극과 훈육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당근뿐 아니라 채찍 또한 아이들 성장에 필요하다.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친화적인 공동체`라고 하면 사람들이 초등부와 중고등부에 예산을 많이 배정해 좋은 음식으로 아이들을 배불리 먹이는 것을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돼서는 안 된다. 음식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 인사를 바르게 하는 것, 욕을 하지 않고 언행을 올바로 하는 것, 남을 배려하는 것, 친구를 포용해 주는 것, 절제하는 것, 희생하는 것, 내가 원치 않아도 따라가 주며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가르치는 것 등등…. 가정과 사회가 소홀히 하는 기본적 인성교육 또한 교회 몫이다. 따라서 교회 어른들이 잔소리를 해서라도 가르쳐야 한다. 잔소리가 왜 잔소리인가. 중요하기에 자꾸 반복하다 보니 잔소리가 되는 것이다.

 #당근과 채찍 모두 필요
 이런 식의 교육을 계속하던 중 어린이 전례단과 복사단이 1박 2일 `파자마 데이`를 가게 됐다. 파자마 데이는 피정이나 캠프보다는 가벼운 행사로, 1박 2일 동안 파자마 차림으로 자유롭게 놀고 나누는 시간이다.

 이때 아이들과 함께했던 중요한 약속 중 하나가 이 기간에 음식은 국물도 남기지 않고 무조건 깨끗이 먹자는 것이었다. 그 약속을 잘 지키면 맛있는 간식을 사주겠다고 슬쩍 흘리기도 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작은 것 하나라도 감사하다고 말하며 먹는 것은 물론 설거지까지 신이 나서 한 것이다. 그 모습이 어찌나 예쁘고 기특하던지, 칭찬을 한바탕 해주고 피자를 사주겠다고 선언했다.

 피자라면 만날 먹는 음식일 텐데도 아이들은 좋아서 난리가 나더니 연예인들에게 환호하듯 "우윳빛깔 신부님!"을 외치기 시작했다. "이 녀석들아, 신부님이 어딜 봐서 우윳빛깔이냐?"하니 한 개구쟁이를 시작으로 "두윳빛깔 신부님! 두윳빛깔 신부님!"하고 소리치기 시작했다.

 우유만큼 뽀얀 건 아니고 노르스름한 두유 정도는 된다나? 피자와 칭찬만으로 이렇게 하나가 되다니, 역시 아이들을 키우는 데는 채찍보다는 당근인가 보다.

(햇살청소년사목센터 소장, 서울 무악재본당 주임)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12-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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